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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결심' 안철수,벤치마킹 아이젠하워처럼?

중앙일보 2012.04.16 03:00 종합 3면 지면보기
안철수(사진)는 어떤 식으로 대선에 참여할까. 정당 조직을 대체할 포럼과 전문가 지지 그룹인 싱크탱크를 만들어 세(勢)를 확장한다는 계획은 드러났다.



 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의 향후 행보를 짐작하게 해주는 인물이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주변에선 아이젠하워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아이젠하워가 처했던 환경,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방식이 안 원장의 현재 상황과 유사점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 원장 측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모델’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젠하워는 연합군 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총지휘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다. 1953년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8년간 재임했다. 그는 대선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정파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군 예편 후에는 컬럼비아대 총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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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정치 쪽으로 움직인 것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원하는 여론이 한창 달아오른 뒤였다. 아이젠하워는 전쟁영웅이었지만 공화당 색채가 적었고, 일부 현안에 대해서는 공화당에 비판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민주당 소속 현직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인기 높은 아이젠하워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주기를 바랐다.



 공화당도 대대적인 아이젠하워 영입 운동을 벌였다.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던 아이젠하워는 52년 대선 직전, 공화당을 선택했고 당내 경선에서 이겼다. 결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됐다. 안 원장 측은 아이젠하워가 비정치인 출신이고, 공화·민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점이 안 원장의 강점과 일치한다고 본다.



 군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통해 홍보와 선전의 중요성을 체득한 인물이었다. 50년대 초 미국에선 TV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50년 9%에 불과했던 TV 보급률은 선거가 실시된 52년 34.2%로 4배 가까이로 뛰었다. 상대 후보(민주당의 A E 스티븐슨)가 이 같은 시대의 변화를 꿰뚫지 못하고 “TV는 천박한 것”이라며 무시하고 있을 때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선 사상 최초로 TV를 선거에 끌어들이면서 ‘이미지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TV를 통해 ‘나는 아이크가 좋아(I Like IKE·아이크는 아이젠하워의 애칭)’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전달하면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다. 기존 정당 대신 포럼의 기치를 내걸고 초기 정치 행보에서부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겠다는 안 원장 측의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안 원장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어떤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3월 27일 서울대 강연)이라며 틀을 벗어난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 부분 역시 아이젠하워의 정치철학과 비슷하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시절 민주당이 의회의 과반을 확보한 ‘여소야대’ 정국이었지만 조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유연한 정책을 폈다. 군수산업의 비대화를 비판하고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를 주장하는 등 공화당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때론 민주당의 주장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민주당 소속 하원의장이 ‘아이젠하워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이젠하워는 대학 총장 시절에도 유연한 사고로 일화를 남겼다. 본관 건물 앞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학생들이 징계위에 회부되자 “학생들을 징계하는 대신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통행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아이젠하워는 아들을 한국전에 참전시키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지켰다. 이 같은 엄격한 자기관리와 친근한 모습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미국인들은 로널드 레이건과 아이젠하워를 ‘취임 때보다 퇴임 때 더 인기가 높았던 두 명의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안 원장 측은 안 원장이 정치에 뜻을 품기 훨씬 전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공급해 온 것과 올해 초 ‘안철수재단’을 만들어 보유 주식의 절반을 내놓은 게 유권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맥락에서 비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에 나서기 전 이미 전쟁 영웅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아이젠하워와 성공한 벤처 기업인으로서의 안 원장을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다. 안 원장 측도 아이젠하워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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