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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개연설 김정은, 김일성 흉내 내려…"

중앙일보 2012.04.16 00:00 종합 6면 지면보기



김정은, 김일성식 연설정치…6600자 첫 공개 연설























































































15일 오전 10시40분 평양 김일성광장. 이틀 전 장거리 로켓 발사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북한 수뇌부가 김일성 100회 생일 경축 열병식 주석단에 섰다. 열병식 직전 김정은이 단상에 올랐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즐겨 입던 검은 인민복 차림. 낮은 바리톤의 음성으로 20분 가까이 6600자의 축하 연설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렸다. 중간중간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면 이를 응시하기도 했다.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몸을 흔들흔들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평양 AFP=연합뉴스, 중앙포토]
목소리는 김일성과 비슷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는 “김정은 연설은 처음에 들을 때는 힘이 없어 보이지만 김일성 목소리를 흉내 내기 위해 고도의 훈련을 한 결과”라며 “1초에 몇 개의 음절을 말하느냐를 따지는 발화율과 1초간 성대 떨림 수 등이 김일성과 90% 이상 일치했다”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목소리를 분석한 배 교수는 “다혈질적인 고음을 지닌 김정일이 대중연설을 피한 반면 김일성은 입을 작게 벌리고 일정한 톤을 유지하며 조곤조곤 말하는 데서 카리스마를 드러냈다”며 “이를 김정은이 모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김일성 민족의 백년사는 파란 많은 수난의 역사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존엄을 민족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려 세웠다”고 역설하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로 연설을 마쳤다.

 김정은의 이날 연설은 김일성이 1945년 귀국해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행한 연설의 ‘리메이크’판으로 연출됐다. 92년 인민군 창건식(4월 25일) 때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단 한마디만 육성으로 내보낸 김정일과는 달리 긴 연설을 했다. 써 준 원고를 의무적으로 읽는 것 같은 어색함도 보였지만 김일성도 집권 초기 3년간은 그랬다고 한다. 김일성은 생전 육성연설을 즐겼다. 매년 1월 1일 발표하는 신년공동사설도 직접 낭독했다.



 약 2시간20분간 실황중계된 열병식도 김일성 시대의 ‘복고풍’이었다. 항일 빨치산 부대 군복 차림의 열병종대가 등장했고, 북한 열병식 사상 처음으로 기마종대도 나왔다. 기수들은 만주벌판의 흰 눈을 연상케 하는 흰색 망토를 걸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중에게 직접 협력을 호소하는 ‘김일성식 연설정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열병종대의 경례를 받기도 했고 최용해 군총정치국장 등 주로 군부 인사들과만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이날 김정은은 군 간부 70명에게 ‘별’을 선물(준장 진급)했다.



 김정은은 예상과 달리 ‘강성대국’ 진입 원년을 선포하진 않았다. 대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 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선군(先軍)’만 강조했다. 김정은은 또 “만난의 시련을 이겨낸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고 강조했다. 강성국가 진입 원년을 선포하는 대신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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