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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아름다운 말

중앙일보 2012.04.16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선조 35년(1602)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고천준(顧天峻)·최정건(崔挺健)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왕 선조(宣祖)도 “(둘이) 나오자 서방(西方 : 평안도·황해도)의 민력(民力)이 다해져 나라의 근본이 뿌리 뽑혀 근근이 지내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신의 횡포가 심해진 것은 임란 때 원병(援兵)을 보낸 이후부터였다. 명나라가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꺼려 원병을 보내 놓고서도 이를 빌미로 조선의 왕위계승에 간섭하려 하고 사신들은 온갖 뇌물을 요구해 비난이 높았다. 문신 윤국형(尹國馨)은 『갑진만록(甲辰漫錄)』에서 “고천준의 탐욕이 비길 데가 없어 음식과 공장(供帳)의 작은 물건들까지 모두 내다 팔아 은(銀)으로 바꾸었다”면서 “말하면 입이 더러워진다(言之汚口)”고 비판했다.

 입이 더러워진다는 ‘언지매구’와 비슷한 말이 ‘언지오구(言之汚口)’인데, 선비들의 말 중 가장 심한 욕이었다. 광해군 9년(1617)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이경직(李景稷)은 은화(銀貨)가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부상록(扶桑錄)』에서 “은화와 관계된 것이어서 말하면 입이 더러워져서(言之汚口) 그냥 두고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비들이 더러운 말을 꺼렸던 것은 어려서부터 『소학(小學)』을 배웠기 때문이다. 『소학』의 첫 단락이 가언(嘉言), 즉 아름다운 말인데 “아름다운 말을 기술하고 착한 행실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말이란 남의 작은 허물은 덮어주고 착한 행실은 칭찬하는 말을 뜻한다. 우리나라 선비들의 언행을 모은 『대동소학(大東小學)』의 ‘가언’편에는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자제들에게 “겸손함과 공손함은 곧 군자의 위엄 있는 덕이니 너희들은 평생 이 말을 기억하라”면서 “너희들은 내가 일찍이 남에게 거만하게 대하거나 남의 과실을 말하는 것을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들이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과실은 용서했지만 국사에 관련되면 용서 없었다. 중종 2년(1507) 12월 사헌부 지평 김안국은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반정 1등공신 박영문(朴永文)에 대해 “평생 동안 심술이 흉악하고 사특한 사람인데, 행실도 그렇습니다”라고 공박했다. 이처럼 국사에 대한 것은 강하게 공박했지만 최소한의 금도가 있었다. 정화(政化)라는 말이 있다. 정치와 교화라는 뜻으로서 정치는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것이란 뜻이다. 『서경(書經)』 필명(畢命)에 “정치는 그 풍속을 개혁해야 한다(政由俗革)”는 말도 있다. 입 자체가 더러운데 어찌 풍속을 교화하겠는가? 정치의 해에 정치가나 유권자들이 새겨두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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