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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중국의 ‘92파’

중앙일보 2012.04.16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92파(派), 세기를 앞선 기업인들’. 요즘 중국 언론에 ‘1992년 창업한 기업인 그룹’을 뜻하는 ‘92파’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펑룬(憑侖) 완퉁(萬通)그룹 회장, 천둥성(陳東昇) 캉타이(康泰)보험 회장, 궈판성(郭凡生) 후이충왕(慧聰罔) 회장, 판스이(潘石屹) 소호그룹 회장 등 스타급 기업인이 폭넓게 포진해 있다. 유력 경제잡지 ‘중국기업가’는 최신호에서 이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92파’가 새롭게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1992년, 중국은 아직도 천안문 사태(1989년 6월)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혁을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폐쇄 체제로 돌아갈 것이냐를 놓고 노선 투쟁이 벌어졌다. 보수세력들은 ‘개혁·개방이 자본주의의 폐해만 불러왔다’며 개혁파를 공격했다. 이 분위기를 역전시킨 게 바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남부지역 순방 연설)였다. 덩은 그해 1월 말 우한(武漢)·선전·상하이 등을 돌며 “시장은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도 필요하다면 시장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며 개혁의 기치를 다시 들었다.



 덩의 카리스마는 보수파의 공세를 꺾기에 충분했다. 봄 동산에 불 번지듯 중국 전역에서 창업 붐이 일었다. 공직을 떠나 창업 대열에 합류한 젊은이가 그해 10만 명을 넘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게 바로 ‘92파’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다시 부각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남순강화’로 조성됐던 개혁의 물결을 다시 일으키자는 뜻이다.



 위기감의 발로다. 중국 경제학계에서는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국가의 지나친 경제 간섭이 문제다. 국유 기업·은행은 핵심 산업과 금융자본을 독점하면서 배를 불리고 있지만, 민영기업들은 돈 구경하기가 힘들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4조 위안(약 700조원)의 경기부양 자금은 대부분 국유기업에 몰렸다. 국유기업 1, 2위 업체의 총 순익이 500대 민영기업의 전체 순익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국가는 빠지고, 민간에 힘을 실어주라(國退民進)’고 외친다. 일각에서는 ‘정치 민주화’가 거론되기도 한다. 정부가 호응하기 시작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최근 ‘국유 은행의 독점구조를 깨라’고 지시했다. 원저우(溫州)를 민간금융의 시험구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 총리는 지난달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정치 민주화’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92파’가 세(勢)를 불려가고 있는 양상이다.



 올가을 지도부 교체를 앞둔 중국 정가에서는 지금 물밑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권력투쟁은 언제나 경제분야로 확산되곤 했다. 개혁이냐, 보수냐의 싸움은 이제 경제정책으로 옮겨붙을 기세다. ‘1992년 창업 기업인’의 부각은 그 시작일 수 있다. 우리가 ‘92파’ 보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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