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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보낸 독립청원서, 봉화가 발원지

중앙일보 2012.04.16 00: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심산 김창숙
일제강점기 유림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경북 봉화지역에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는 봉화군민들의 서명이 3만명을 넘어섰다.


유림 김창숙 해저리서 초안 써
“기념비 세워야” 군민 3만명 서명

 봉화군 파리장서비 건립추진위원회 이우상(80) 위원장은 15일 “지역에서 유림단 활동을 한 선현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 그 후세의 사기 진작을 위해 파리장서 운동 기념비 건립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지난달부터 주민과 출향인 등 3만여 명이 서명으로 뜻을 모아 이번 주 중 국가보훈처에 진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유림 400여 명은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 곽종석(郭鍾錫) 등 137명의 전국 유림 대표가 2674자에 이르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보낸 것을 가리킨다. 이 사건은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와 함께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은 전체 137명 중 경북 유림이 45명이며 이 가운데 봉화 출신이 9명이다.



 봉화지역 유림이 올 들어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나선 것은 봉화군이 2010년부터 파리장서비의 건립 지원을 관계 당국에 건의했으나 계속 보류돼 왔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경남 밀양·거창·합천 등 전국 7곳에는 이미 파리장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지역 유림이 서명운동에 나서자 봉화군은 파리장서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근거자료를 찾아 힘을 보탰다. 봉화군이 새로 찾아낸 핵심 자료는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만회고택에서 파리 만국 평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의 초안이 직접 작성됐다’는 기록이다. 즉 파리장서가 탄생한 곳이 봉화라는 것이다. 이 기록은 봉화군 주민복지과 이문학(57) 주무관이 『유림단독립운동실기(儒林團獨立運動實記)』(유림단독립운동실기편찬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다.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바래미)는 유림단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심산 김창숙(金昌淑)의 아버지 고향이다. 심산의 아버지 김호림은 봉화에서 멀리 떨어진 성주로 양자를 들어 거기서 심산을 낳았다고 한다. 심산은 당시 파리장서를 짚신으로 엮어 상해임시정부로 가져갔다. 임시정부는 이것을 다시 영문과 국문으로 번역해 한문 원본과 함께 수천 부씩 인쇄해 파리 강화회의와 중국 그리고 국내 향교 등지에 배포했다.



 독립운동사의 권위자인 안동대 김희곤 교수 등은 『봉화독립운동사』에서 ‘파리장서에 참가하거나 서명한 봉화인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것은 김창숙과 봉화의 인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다른 자료에는 봉화읍 해저리가 일본 헌병의 혹독한 탄압으로 희생이 많았던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



 봉화군 이 주무관은 “봉화 등 경북지역이 파리장서 사건과 2차 장서 운동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한 데도 정작 관련 사업 지원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역 유림은 전체 건립 예산 4억원 중 1억원이라도 국비보조를 받아야 사업의 명분이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알려왔습니다 기사와 관련해 기미유림독립운동유족회(회장 곽목) 측은 파리장서를 경남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면우 곽종석 선생이 서술한 뒤 심산 김창숙 선생이 지참해 출국한 것으로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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