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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팩 “한·미 FTA로 13개월치 물량 수주”

중앙일보 2012.04.16 00:00 경제 3면 지면보기
12일 인천 부평에 있는 기계식 프레스 제조업체 심팩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프레스 조립에 열중하고 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심팩은 제너럴모터스(GM)·포드와 같은 미국 자동차업체를 공략하기 위해 200억원을 들여 생산시설을 업그레이드했다. [김성룡 기자]
12일 인천 부평 소재의 금속성형기기(프레스) 제조업체 심팩 공장. 2~3분 간격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퍼졌다. 프레스 조립을 위해 천장 크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다. 심팩의 이상철(35) 재무기획팀장은 “우리 공장에서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리는 빈도 수는 수주 물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며 “한·미 FTA 덕에 벌써 13개월치 수주 물량이 꽉 찼다”고 했다.


FTA 발효 한 달, 현장에선

 심팩은 한·미 FTA를 겨냥해 지난해부터 200억원을 들여 설비시설 확충에 나섰다. 지난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이 273억원임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 번 돈을 모두 시설 투자에 쓴 셈이다. 제2공장도 짓고, 자동차용 고급 강판을 찍어낼 수 있는 고중량·정밀 기계도 새로 장만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즉시 철폐된 관세(4.4%) 인하 효과로 수주 물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한 조치다. 전지중(49) 사장은 “제너럴모터스(GM)·포드와 같은 미국 자동차 업체를 잡아 포화상태인 한국 시장과 경기가 좋지 않은 유럽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15일로 한·미 FTA가 발효된 지 한 달이 됐다. 성과를 집계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국내 산업계가 FTA로 활기를 띠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저렴한 가격을 좇아 중국 업체와 손잡았던 미국 바이어들이 국내 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국내 중소기업에 투자하겠다는 해외 문의도 활발하다. 대형 마트에선 저렴해진 미국산 오렌지·와인이 인기다.



 가전제품용 스테인리스 레일 제조업체 세고스는 올 초 한 미국 냉장고 제조업체와 300만 달러(약 34억원)어치 납품 계약을 했다. 10년째 이 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단가가 10%가량 싼 중국·대만산 제품에 번번이 밀렸다. 이에 지난해부터 한·미 FTA가 발효되면 관세(3.9%)가 즉시 철폐되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세고스 관계자는 “거래처가 올해부터 고급 냉장고 생산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어서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고 중국·대만산에 비해 품질도 더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해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세고스의 예처럼 FTA 발효 이후 관세가 즉시 철폐된 업종에서 수출량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일반기계·합성수지·자동차부품 등의 올 3월 수출량이 지난해 동월과 비교해 평균 30%가량 늘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까다로운 원산지 증명 절차처럼 FTA 효과를 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부품 업체 인지컨트롤스 관계자는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수십~수백 개에 달하는 부품의 원산지를 일일이 증명하기가 어렵고, 실수할 경우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해외 업체의 문의도 활발하다. 이달 초 지경부와 KOTRA가 뉴욕에서 개최한 투자설명회(IR)엔 씨티그룹·화이자 등 현지 금융·부동산 업계 관계자 200명이 참석했다. IR 이후 반도체 장비업체 비코 등 7개사가 4억8000만 달러(약 5400억원)를 한국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한기원 KOTRA 인베스트코리아 커미셔너는 “한·미 FTA 발효로 한국 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올라섰고 그만큼 투자 위험이 사라졌다는 점을 강조해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의 수입품 가격도 속속 내리고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오렌지다. 15일 서울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는 미국산 오렌지 한 개(300g 내외) 가격이 1080원이었다. 관세 인하(50%→30%)로 120원가량 내려 FTA 발효 이후 매출이 19.5% 늘었다. 관세(15%)가 즉시 없어진 와인 매출도 크게 늘었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수입업협회가 국내 수입업체 203곳을 조사한 결과 와인·맥주, 과일·견과류, 주스·음료 등의 수입품 가격 인하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FTA가 발효됐음에도 가격 변동이 없는 수입품도 많아 소비자 체감효과가 적다는 지적도 있다. 송송이 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수입단가가 오르거나 환율·물류비용 증가, 수입한 재고가 남았다는 등의 이유로 기존 가격을 조정하지 않은 업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은화·조혜경·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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