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혜훈 “사찰 파동 터지자 ‘이젠 끝났다’ 좌절도”

중앙선데이 2012.04.15 02:38 266호 4면 지면보기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이혜훈 의원은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상으론 줄곧 새누리당이 좋았다”고 말했다. 13일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152석을 예상했나.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가 150석 넘는 걸로 나왔다. 우리끼리는 ‘거품 있다. 보지 말자’고 말했다. 후보들에게 보내주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여의도연구소에선 언제부터 150석 이상으로 나왔나.
“공천이 늦어져서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엔 전국적인 조사를 할 수도 없었다. 통상 하루에 30곳쯤 여론조사를 했다. 그러다 3월말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는데 예상 외로 결과가 좋았다.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는 집전화고 자동응답시스템(ARS)이다. 답변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존 질서에 협조적인 분들인데 우리 표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선 15%포인트 빼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여론조사로는 좋았다. 선거 며칠 전엔 단독 과반의석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일단 우리가 ‘잘못했고 반성한다. 그리고 바꾸겠다’고 약속한 그런 진심이 국민에게 어느 정도 전달됐다고 본다. 지난 연말에만 해도 100석도 안 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 실제로 공천 신청을 받을 때만 해도 민주당에 신청자가 몰렸다. ‘한나라당은 끝났다’는 말이 많았다.”

-무엇을 바꾼 게 먹혔다고 보나.
“한나라당은 부자 정당, 이명박 정부는 재벌들을 위한 정부란 인식이 있었다. 우리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의 목소리를 먼저냈다. 그런 부분들이 컸다.”

-총선의 고비는 언제였나.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이 처음 터졌을 때 우리는 이제 선거 못 치르겠다고 생각했다. 암담했다. 우리 실무자들 사이에선 ‘짐 싸서 나가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계속 좋았다. 사찰 파동 이후엔 더 잘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이거 믿지 말자. 여의도 연구소 조사가 변화된 트렌드를 반영 못하는 점이 있으니 총선 끝나면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은 어떻게 찾아냈나.
“우리가 찾아낸 게 아니라 제보를 받았다. 당 민원국으로 어떤 분이 알려 왔는데, 노원쪽으로 알려줬더니 그쪽에선 이미 많이 퍼져있는 상태였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득표 수론 모르겠지만 200~300표 차이의 박빙 승부에선 승부를 가를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고 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지역인 강원·충청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두 지역은 박근혜 위원장이 유세를 다녀간 뒤 눈에 띄게 지지율이 올랐다. 한 번에 3%포인트 정도의 효과로 조사됐다. 충청 유권자들은 박 위원장이 세종시를 지키려 했던 모습을 기억해 주신 것 같다. 강원은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고생했던 것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다.”

-민주당의 패인은 뭐라고 보나.
“야권연대가 진보 진영엔 독이 됐다는 분이 많다. 우리 국민은 아직 통합진보당이 말하는 부분에 선뜻 동의할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연대하는 바람에 한·미 FTA 폐기, 제주 해군기지 철회 문제도 나왔다. 민주당으로선 거리가 먼 얘기다.”

-종합상황실장으로서 가장 힘든 것은 뭐였나.
“모든 지역에서 박근혜 위원장을 원했다. 매일 그런 후보들의 전화를 수십 통씩 받았다. 어떤 분들은 중앙 당사에 와서 돗자리 깔고 농성했다. 어떤 분은 회의장에 들어와서 물병·전화기·의자 등을 내던지고 난리도 피웠다. 수도권의 한 후보가 있었는데 4일간을 내리 상황실로 출근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에 운동을 하시라’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내가 닷새 다니는 것보다 박 위원장이 5분 오는 게 효과적’이라며 버티더라.”

-박 위원장이 방문하면 실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나.
“지난해 10·26 재·보선 때 대구 서구청장과 부산 중구청장은 힘들었다. 처음엔 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이 다녀가자 대구에선 그날 밤에 7%포인트 올랐다. 이번엔 ‘박빙지역만 지원 유세한다’고 했더니 박빙으로 나온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를 만들어 온 분도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압도적으로 밀리지 않았나.
“말로만 듣던 SNS 상황을 매일 체크했더니 기가 막히더라. 특히 민간인 사찰 때는 1분에 수십 개의 글이 올라왔다. 매초 1~2개씩 글이 쏟아졌다. 그런데 SNS 이슈와 실제 표심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SNS에서 새누리당은 20석도 어려운 당이더라.”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