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선운동으로 反유대 정치인 본때, 막강 파워로

중앙선데이 2012.04.15 02:18 266호 28면 지면보기
에이팩은 토머스 다인(사진) 사무총장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다. 다인은 1940년 미국 중서부 소도시에서 태어난 체코계 유대인이다. 대학 졸업 후 필리핀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근무했다. 국내 정치 동향 분석과 정치인 인맥에 밝은 그는 민주당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와 에드워드 케네디의 보좌관을 지냈다. 시온주의자이지만 유대교 개혁파인 다인은 리버럴한 성향을 보였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미 정계 움직이는 이스라엘 로비기구 AIPAC ㉻ 중흥 주역 토머스 다인

의회·연방정부·언론계로 접촉선 다변화
다인은 80년 에이팩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유대인 재력가의 도움을 받아 예산을 크게 늘렸다. 실무 인력도 대폭 보강했다. 접촉선도 의회 인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연방정부와 언론계로 다변화했다. 다인은 사무총장 재임 13년간 에이팩을 가장 강력한 이스라엘 로비기구로 키웠다.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성공했다. 몇 가지 실례가 있다. 오랫동안 유대 사회와 가까웠던 조지 맥거번(7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상원의원은 70년대 말 카터 행정부가 추진한 F-15 전투기의 대사우디아라비아 판매에 동조했다. 그러자 80년 선거에서 유대계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해 낙선했다. 일리노이주 공화당 하원의원 폴 핀들리는 82년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을 만나고 돌아와 “미국은 중동 문제를 보다 균형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균형’ 발언이 그의 22년 하원의원 경력을 마감케 했다. 같은 해 있은 선거에서 유대 로비는 상대방 민주당 후보에게 많은 후원금을 지원해 핀들리를 낙선시켰다. 일리노이주 공화당 원로 정치인 찰스 퍼시 상원외교위원장은 “미국은 PLO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84년 선거에서 당시 무명이었던 민주당 폴 사이먼 후보에게 근소한 표 차이로 패했다. 에이팩은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퍼시를 표적 낙선시키기 위해 전국 규모의 ‘사이먼 후원회’를 조직했다. 유대 부호들은 사이먼에게 많은 액수의 정치헌금을 보냈다. 다인은 선거 후 “미국 유대인은 퍼시의 낙선을 위해 뭉쳤다. 이제 모든 미국 정치인은 그의 낙선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다인은 93년 유대인 보수파가 에이팩 지도부에 포진하자 사무총장직을 사임하고 한동안 독립적인 이스라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이스라엘정책포럼(IPF)에 정치고문 직을 맡고 있다.

에이팩의 맹활약으로 미국의 대이스라엘 무상원조나 차관공여 문제는 미국 상·하원 소관 분과위원회에서 토론 없이 의결되는 전통이 세워졌다. 에이팩은 중동 평화문제에 있어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가령 과거 중동 평화회담의 난제 중 하나였던 동유럽 유대인 정착촌 문제만 보아도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카터 시절 정착촌은 분명 ‘불법’이었던 것이 레이건 때는 ‘평화의 장애물’로 한 발 후퇴했으며 그 이후엔 ‘복잡한 사정’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변했다.

2002년 4월 미국 상원의원 99명은 일부 유럽·중동 국가들의 반유대주의에 맞서 미국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냈다. 심장수술로 입원 중이던 제시 헬름스 공화당 의원 단 한 명만 서명자 명단에서 빠졌으므로 실제로는 상원의원 전원이 서명한 것이다. 2008년 말에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하마스 공격은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런 국제 여론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국 상·하원은 2009년 1월 이스라엘의 군사행위는 자위권 발동이란 내용의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현재 10여만 명의 미국 각계 유력 인사가 에이팩에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에이팩이 최소한 상원의원 40명과 하원의원 200명의 고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로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좋지 못하다. 우리는 ‘로비’ 하면 우선 음험한 뒷거래를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많은 로비스트와 로비 대상자가 비리로 사법당국의 닦달을 받는다. 여기에 여성 로비스트까지 등장하면 추가 추문도 따른다. 반면 미국은 로비 천국이다.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이다. 약 20만 명의 로비스트가 의회와 정부에 등록하고 투명하게 활동한다. 소득에 대한 세금도 낸다. 미국엔 많은 로비기구가 있다. 그중 두각을 나타내는 단체는 ‘퇴직자협회’ ‘군산복합체’ ‘총기협회’ 등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월등한 힘을 갖고 있는 로비가 바로 유대 로비다. 그중에도 에이팩은 가장 강력한 로비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직능별·이해단체별·국별 로비도 결국 언론과 금력을 쥔 유대 사회와 제휴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자연 유대 로비가 한 수 위다.

국익 대변할 수 있는 민간 로비체제 필요
우리는 항상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를 강조한다. 그러나 로비는 우방 사이에도 필요하다. 주요 국익이 걸린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비공식 채널로 전달하고 또 관철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항시 작동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누가 측근 인물인가를 파악한다고 매번 허둥지둥한다. 그릇된 정보로 인한 시행착오와 낭비도 따른다. 로비는 단발성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인적 유대가 기본이다. 성급한 기질의 한국인이 로비에 약한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조속한 결과를 얻으려고 필요하면 뇌물 등 불법 행위도 불사한다. 과거 70년대 대미 로비의 실패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우리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민간 로비 체제를 중점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에이팩 로비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