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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 유전자로 보면 거기서 거기

중앙선데이 2012.04.15 02:17 266호 28면 지면보기
안식년으로 아이들과 미국에서 체류하던 2007년 봄, 조승희 사건이 터졌다. 조지아 공대의 한국계 재학생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무고한 35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CNN은 참사 현장과 관련된 내용을 생중계했고 뉴스에서는 조승희의 성(姓)인 Cho가 계속 들려왔다. 성이 조씨여서 학교에서 Cho로 불리던 중학교 1학년 아들은 범인이 한국계인데 성이 같다며 아이들이 자신을 괴롭히거나 따돌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학교 가기를 무서워했다. 특히 아이가 유색 인종이 많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나도 매우 걱정됐고 담임에게 말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그러나 다 기우였다.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인종

그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담임은 혹시라도 조승희 사건과 관련해 아들에게 불편한 말을 하거나 괴롭히는 학생은 교장실로 불려가고 심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 아이를 조승희와 동일시하거나 미움을 투사하는 아이들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이 사건을 겪으며 때로는 다양한 인종과 많은 사회문제로 골치 아픈 미국을 이끌어 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이성적이었으며 개인과 집단을 혼동하지 않는 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태도를 아주 엄격하게 다음 세대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인종이나 종족은 늘 차별의 원인이 되어왔다. 20세기만 봐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1994년 르완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80만 명 대학살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종을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관심사 중 하나도 인종을 유전정보로 정의할 수 있는가였다. 인간 유전체 사업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유전정보 전체, 즉 지놈(genome)을 규명하는 프로젝트였다. 즉 인간 DNA 전체의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네 종류 염기의 개수와 그 순서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을 중심으로 1990년부터 13년간 진행돼 2003년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다. 총 30억 달러(한국 돈으로 3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인간을 만드는 부품 리스트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어떻게 이 부품들이 조립돼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고 유지하는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 결과 사람의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염기 쌍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정보의 양을 이해하기 쉽게 환산해보면 여백 없이 폰트 11의 A, T, G, C 글자로 가득 채운 A4 용지를 90m 이상 쌓아 올리는 정도의 정보량이다. 30억 염기 쌍 중 실제 유전자로 작용하는 부분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부분의 기능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인간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인간 유전자의 수(數)가 예상보다 엄청 적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10만 개는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고작 2만500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놀라움은 인간과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 수를 비교하면서 더욱 커졌다. 매우 고등한 동물로 자부하는 인간의 유전자는 맥주나 빵을 만들 때 넣는 효모보다 겨우 4배 많고, 과일 주변을 날아다니는 초파리의 1.8배, 아주 작은 지렁이(꼬마 선충)보다는 겨우 1.2배 많다.

또 2005년엔 진화상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가 유전체 염기서열의 98%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전체 유전체에서 겨우 2%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또 인종, 외모, 능력 등 우리 눈에 매우 다르게 보여도 사람은 99.9% 이상의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단 0.1% 미만의 유전정보 차이가 인간 사이의 다름을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2003년 공식적으로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종결된 후 유전체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들은 미국 정부 지원으로 ‘인간 유전체의 차이와 인종’에 관한 연구와 워크숍을 했다. 현재 우리가 인종이라 부르는 각기 다른 여러 개인의 염기서열을 비교했고, 인종을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해 그 결과를 2004년 네이처 유전학지 특집으로 발표했다.

그들의 결론을 인용하면 ‘DNA 연구 결과는 현대 인간의 피부나 머리카락 색깔 등엔 개인 차이가 있으나 인종이라 부를 만한 유전자들 간 차이의 패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발표 이후 인종차별주의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분리할 수 있는 인종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라는 종(species) 내에 인종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으로 규정됐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종족이나 인종을 구별하며 미움과 분노를 투사하는 우리는 유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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