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난화로 통신속도가 빨라진다?

중앙선데이 2012.04.15 02:14 266호 29면 지면보기
인구 500만이 안 되는 노르웨이. 14억 명 가까운 중국의 눈에는 손바닥만 한 나라일 것이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평화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사오보(劉曉波)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을 때다. 화가 잔뜩 난 중국은 노르웨이를 압박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무역보복 카드까지 들이댔다. 애꿎은 노르웨이산 연어부터 중국 수출길이 막혔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노르웨이로선 반격 카드가 절실했다. 그때 떠올린 게 북극, 북극위원회였다. 북극위원회에 중국이 옵서버로 참가하는 것을 저지하는 거였다. 북극 탐사 등 ‘스펙’을 쌓고 있다는 중국이지만 북극위원회에선 정회원국인 노르웨이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런 반격 카드가 보도된 뒤 흥미롭게도 양국 관계는 조용해졌다. 북극의 힘이 중국의 기세를 꺾기라도 한 것일까.

북극권은 이제 신천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유럽 각국이 신대륙을 찾아 나서고, 새 길을 열던 광경이 지금 북극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극권은 이제 자본이 누비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올여름 북극 지역에선 도쿄~런던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부설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러시아 북극 횡단 케이블 시스템(RUTACS·Russian Trans-Arctic Cable System)’이다. 바다가 얼어붙어 배가 다닐 수 없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공사다. 케이블이 개통되면 도쿄~런던 사이의 통신 지연 시간은 종전 0.23초에서 0.07초가량으로 단축된다. 절대 거리가 줄어드니 신호 전달 속도 또한 빨라지는 것이다. 통신 속도 이상으로 중요한 점이 있다. 정세가 불안한 중동의 바다, 배의 닻에 걸려 케이블이 끊어질 위험이 있는 동남아 해협 등을 통과하지 않는 것이다.

북극의 바닷길은 수에즈운하나 파나마운하 못지않은 단축 루트다. 북극 바다를 관통하면 한국에서 유럽까지 거리로는 3분의 1, 시간으로는 일주일 이상 단축된다. 그만큼 비용이 절감된다. 인도양 루트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도 북극 바다에는 없다. 지정학적 의미도 크다. 남쪽 항로가 관계국의 분쟁으로 차단되는 경우 대체 항로로 이용할 수 있다. 북극권을 항해하는 선박에 해로 정보를 제공하는 위성서비스가 나올 정도로 신항로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북극권에는 천연자원도 풍부하다고 한다. 빙하가 사라지면 채굴이 쉬워진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연가스나 원유 중 채굴 가능 매장량의 4분의 1 정도가 북극권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고유가 시대가 계속된다면 채산성도 충분하다. 북극권 신천지는 우리에게도 기회다. 조선·해운 강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때다.

봄 추위로 꽃이 좀 늦게 피었다. 북극 지방의 온난화 때문에 약해진 제트기류가 찬 공기를 고위도 지역에 가두지 못해 빚어진 현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꽃이 전하는 북극권 개발의 열기, 우리 기업과 시장도 주목해야 된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