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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바뀌어야 혼탁선거 사라진다

중앙선데이 2012.04.15 02:13 266호 30면 지면보기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신동재 칼럼

아무리 박빙의 승부였다지만 이번 4·11 총선은 혼탁선거의 극치였다. 새 인물이 대거 출마했고, 여야 정당이 새 정치를 하겠다고 온갖 구호를 내걸었지만 역시 공염불로 끝났다. 정책대결은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방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흑색선전이 춤을 춘 구태선거였다. 이번 총선의 폐습을 그대로 둔 채 다음 선거를 맞이한다면 우리 선거문화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12월 대선은 또 얼마나 혼탁할 것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법원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법원과 판사 개개인이 달라지지 않고선 소모적 선거문화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혼탁 수준은 이미 적발된 선거사범 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검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입건된 선거사범은 당선자를 포함해 1096명에 달한다. 이 중 39명은 이미 구속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792명이 입건되고 30명이 구속된 데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특히 300명의 총선 당선자 가운데 79명이 입건되거나 기소돼 곳곳에서 재선거를 하는 사태가 우려된다. 18대 국회에서는 15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선거사범 처리는 신속성과 엄정성이 관건이다. 검찰은 선거사범을 철저히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하고, 법원은 신속하고 엄정한 재판으로 물의를 빚은 선거사범을 정치판에서 떼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을 보면 우리 법원은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다. 느려 터진 재판 일정에, 물러 터진 판결로 혼탁한 선거문화를 방조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공직선거법은 공소제기 후 1심은 6개월 이내에, 2·3심은 전심(前審) 선고 후 각각 3개월 이내에 끝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지킨 재판부는 많지 않았다. 선거사범의 유무죄가 확정되기까지 2~3년이 걸리는 게 보통이어서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선출직에게 당선 무효형을 내리는 것은 처음부터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재판 지연 덕분에 임기를 거의 채울 때까지 버젓이 금배지를 달고 꼬박꼬박 세비를 받은 이가 수두룩했다. 무자격자가 법안 심사나 예산안 처리 등 각종 표결에 참여한 결과가 되는 셈이다. 심각한 민의왜곡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공판이 늦춰지는 게 법원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기소된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핑계로 법정에 나오지 않으려고 갖가지 꼼수를 쓰고, 소속 정당은 정략 차원에서 방탄국회로 범죄혐의자를 감싸 줬다. 몇 차례 이상 검찰 소환이나 법정 출석을 거부하는 선거사범을 자동으로 구인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때가 됐다.

엊그제 대검은 “당선자와 관련된 선거법 위반 사건을 우선적으로 선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원도 선거범죄 전담 재판장회의에서 “1심과 2심 모두 2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방침을 세웠다. 특히 “당선무효가 되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 선고 가능성이 있는 중대사건은 신속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말을 선뜻 믿기 어려운 것은 역대 선거 때마다 ‘신속한 재판’과 ‘일벌백계’를 외쳤지만 지켜진 게 별로 없어서다. 특히 올해 초 일부 이념에 물든 몇몇 판사가 재판과 관계 없는 일탈적 언행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 법원의 신뢰도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선거사범 재판을 보는 국민의 눈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또다시 법이 아닌 이념의 잣대가 동원되고, 과거처럼 ‘벌금 90만원’ 식의 온정주의 판결을 내리다간 법원의 권위가 추락하고 선거문화 개선도 요원해질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현상은 비방이나 흑색선전이 선거전에서 위력을 떨치는 현상이다.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이 전면 허용되면서 부쩍 두드러진다. 일부 유명 연예인이나 트위터 이용자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의혹을 제기해 상대 후보는 만회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상처를 입은 사례가 적지 않다. 근거 없는 비방과 흑색선전은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측면에서 ‘돈 선거’ 못지않게 폐해가 크다. 선관위와 검찰·법원이 무거운 책임의식을 갖고 당락에 관계없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불법과 탈법을 어물쩍 눈감아 준다면 깨끗한 선거는 영원히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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