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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세계 4강, 그 후

중앙선데이 2012.04.15 02:07 266호 31면 지면보기
감독(監督). 국어사전에 나온 단어 풀이는 이렇다. 하나,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함, 또는 일의 전체를 지휘함. 둘, 영화나 연극, 운동 경기 따위에서 일의 전체를 지휘하며 실질적으로 책임을 맡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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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뜻이 안 통하는 곳이 있다. 컬링(curling) 국가대표 팀이다. 취재차 정영섭(55) 한국여자대표팀 감독을 만난 것은 지난주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는 빙판 위에서 연습에 몰두하는 선수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잊자, 4강의 기억을. 대신 4강에 올랐다는 자신감만 안고 가자.”

컬링은 동계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비인기 운동이다. 그래서 훈련 환경도 척박하다. 세계 12위에 불과한 우리 팀이 캐나다 레스브리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올랐지만 대중의 관심은 찰나에 불과했다. 선수들은 국가대표 임기 1년을 마치고 평범한 컬링 선수로 돌아와 20일부터 열리는 국가대표팀 선발전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정 감독은 원래 축구선수였다. 대학 졸업 뒤엔 체육교사가 돼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맡게 된 운동은 ‘빙상’이었다. 축구선수 출신이던 그에게 빙상은 낯설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따라가서 본 세계대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운동이 컬링이었다. 얼음판 위에서 하는 운동이지만 체스를 두듯 상대편 돌을 득점 지역에서 쳐내는 컬링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2003년 경기도체육회에서 실업팀인 여자컬링팀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전국을 수소문해 최민석(33) 코치를 영입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대한컬링경기연맹에서 정 감독은 ‘무자격자’나 마찬가지다. 국가대표팀일지라도 한 명의 코치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다. 대표팀 일정에 맞춰 본업을 제쳐놓고 따라다니지만 그는 무급 감독이다. 해외 경기라도 있으면 사비를 털어야 한다. ‘감독’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연맹에서 인정해주는 ‘감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세계컬링선수권대회. 경기는 열리는데 정 감독은 따라갈 수 없었다. 자비로 따라간들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비표’가 없었다. 덴마크로 간 선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제전화를 해댔다. “감독님 오시면 안 되나요?” 10여 년을 함께한 고참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올해도 사정은 비슷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연맹에 매달려 ‘비표’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정 감독은 자비로 왕복항공권을 사고, 경기장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경기장을 드나들며 경기를 치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맹에서 말하길 감독·코치로 지휘체계가 이원화되면 선수들이 헷갈려 할 수 있다니 어쩔 수 있겠어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선 컬링 전용경기장을 만들어야 한다든가, 모텔에서 지내는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런 거창한 건 고사하더라도 이 한 가지만이라도 바꾼다면 좋겠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어느 팀, 어느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든 적어도 감독·코치 둘 다 인정해주는 것 말이다. 경기장에서 동고동락하는 코치와 감독, 선수들은 이미 한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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