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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별동대가 겨눈 건 심장 아닌 얼굴

중앙선데이 2012.04.15 01:39 266호 11면 지면보기
루비콘 강을 넘어 로마를 평정할 때 카이사르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행동에 들어선 뒤에는 과감했다. 루비콘 강가에 서있는 카이사르와 그 군대의 당시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사진 JER’s Place]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의 유명한 말이다. 기원전 49년 1월 10일 루비콘 강을 건너 이탈리아 북부로 넘어갈 때였다. 루비콘 강은 로마에서 동북쪽으로 350㎞ 떨어진 곳에 있는데 강이라기보다는 개천에 가까울 만큼 초라하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로마인들은 군사 쿠데타를 막기 위해 로마를 향하는 군대는 루비콘 강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도록 규정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라이벌인 폼페이우스와 결탁해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군대를 해산하고 카이사르의 본거지였던 갈리아 지역의 총독에서 물러나라는 명령이었다. 강 앞에서 멈춘 카이사르는 장고 끝에 결단을 하는데 이때 그는 그리스 시인 메난드로스의 시를 인용했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 후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의미할 때 이 어구를 인용했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22> 승패는 돌고 돈다

카이사르가 내전을 종식한 결정적인 전투는 파르살루스 전투다. 이 전투는 알레시아 공방전과 함께 카이사르의 군사적 천재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전투다. 파르살루스 전투는 기원전 48년 8월 9일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의 파르살루스 평원에서 벌어졌다. 이때 병력의 규모는 폼페이우스가 보병 110개 대대 4만7000명 기병 7000기였고, 카이사르가 보병 80개 대대 2만2000명 기병 1000기였다. 폼페이우스가 보병은 2배, 기병은 무려 7배 정도로 우세했다. 갈리아의 800여 도시를 공략하며 300여 종족을 평정하고 300만이나 되는 적과 싸워 100만을 죽인 카이사르 군단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49년 디라키움 전투에서 카이사르를 꺾었던 폼페이우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폼페이우스를 따라나서 진영을 가득 메운 원로원의 의원들은 아예 카이사르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며 폼페이우스에게 빨리 끝장을 내라고 독촉했다. 폼페이우스의 군대에는 약점이 있었다. 대부분이 신병이거나 전투를 경험한 지 오래인 고참병으로 짜여 있었다. 그러나 7배나 되는 폼페이우스의 기병은 카이사르에게 절대적인 위협이었다. 전쟁의 승패는 바로 이 기병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7배나 되는 폼페이우스 기병대 약점 간파
그래서 카이사르는 지금까지 전쟁사에는 없었던 기발한 전략 예비대를 만들었는데 중무장 보병의 제3열에서 6개 대대(2000명)를 차출해 별동대를 편성한 것이다. 이들은 40대 전반의 최고참병으로 카이사르 밑에서 적어도 10년 동안 싸워온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적 기병대에 로마 명문의 자제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카이사르는 이들에게 창을 투척하지 말고 대신 뾰족한 창끝으로 그들의 얼굴을 겨누라고 지시했다. 이어 적 기병의 눈에 띄지 않게 제3열의 우측 후방에 별동대를 비스듬히 배치했다.

카이사르는 먼저 보병을 움직였고, 폼페이우스는 우선 기병을 동원했다. 7000기의 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1000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용감했지만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카이사르 기병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카이사르의 우측면이 노출됐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폼페이우스의 기병들이 카이사르의 우측과 배후로 포위 기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뒤에 숨겨 두었던 6개 대대의 별동대가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카이사르의 명령대로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상처 입을 것을 두려워한 로마의 자제들이 달아나기에 바빴다. 기병전에서 승패가 갈리자 카이사르는 최강의 제10군단이 주축인 예비대의 제3열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제1, 2열의 지친 병력과 교체한 제3열은 펄펄 넘치는 힘으로 폼페이우스의 좌익을 순식간에 붕괴시켰다. 때에 맞춰 6개 대대 별동대와 기병들은 폼페이우스의 좌측면과 후방을 동시에 강타했다.

힘없이 무너져가는 부대를 보며 폼페이우스는 변장을 하고 몰래 라리사로 도망갔다. 이 전투에서 폼페이우스군은 6000~1만5000명의 전사자가 있었고, 카이사르군은 불과 200명의 병사를 잃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군단의 전사자들을 보면서 외쳤다. “그들은 이렇게 되기를 원했노라.” 폼페이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 도망갔다 믿었던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 카이사르는 그의 죽음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폼페이우스의 죽음을 알았다.” 카이사르다운 절제된 문장이다. 아니 시오노 나나미가 인용한 대로 ‘문장이라기보다는 대리석에 새겨진 예술’이었다.

카이사르의 전쟁을 보면서 리더가 새길 대목이 있다. 루비콘 강에서의 행동이다. 결심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일단 결심을 했다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루비콘 강 앞에서 카이사르는 부하와 친구들까지 불러놓고 오랫동안 논의했다.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이 그만큼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고 끝에 결단을 했을 때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일을 추진해나갔다. 채근담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스스로를 바쳐 일하기로 했다면 다시는 그 일을 의심하지 말라(舍己毋處其疑). 의심하게 되면 결심한 자신의 의지에 부끄러움을 주게 된다(處其疑卽所舍之志多愧矣). 만약 결심 후에도 머뭇거린다면 적에게 움직임이 탄로날 수 있고, 부하들에게는 지휘관이 우유부단하다는 불신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심했으면 지체하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에 옮겨야 한다. 승리를 위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사람의 내면에 깔린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 귀족 자제의 곱상한 얼굴을 겨냥한 발상은 가히 압권이다. 군인이라는 단어인 영어 ‘솔저(Soldier)’는 금화라는 의미의 솔리더스(Solidus)에서 유래했다. 당시 로마군인은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에 그 속성을 잘 알았던 카이사르는 돈으로 이들을 매료시켰다. 열심히 싸워 얻은 전리품은 모두 병사들의 몫으로 돌렸고 가장 좋은 전리품은 가장 용감히 싸웠던 병사에게 돌아갔다. 허울 좋은 명분보다는 무엇을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잘 알았던 카이사르의 심리 용병술이다. 리더는 이렇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승자여, 몸을 낮춰라패자여, 다시 시작하라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 보면 유명한 ‘전승불복(戰勝不復)’, 즉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전쟁에서 한 번 이길 때 사용한 방법은 다시 쓰기 힘들다. 물론 같은 방법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설마’ 하는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요행에 가깝다. 혹자는 말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맞는 말은 아니다. 역사가 그대로 반복될 수는 없다. 상황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이 역사의 ‘해석’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전쟁의 상황도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다. 지휘관이 다르고 부하들이 다르고 적이 다르고 기상이 다르고 지형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전쟁을 할 때마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뒤에 이어지는 어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응형무궁(應形無窮), 즉 그때그때 다르게 변하라는 것이다. 혁신하라는 것이다. 재빠른 관찰, 유연한 대처, 전혀 새로운 시도를 말하고 있다. 카이사르는 이것을 잘했다. 확실히 그는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전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 본능적인 직감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전승불복의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승리도 영원한 패배도 없다는 것이다. 승리와 패배는 돌고 도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겼다고 해서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자만하면 반드시 넘어진다. 정권을 장악한 카이사르는 로마의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급기야 종신 독재관을 선언했다.

일종의 자만심이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브루투스가 이끄는 일군의 원로원 의원들이 공화정을 복고하고자 결국 카이사르를 살해했다. “브루투스, 너마저!”의 절규는 유명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카이사르도 영원한 승자는 아니었다. 세상에 영원한 승자가 어디 있겠는가? 꽃이 아무리 고와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花無十日紅) 권력 또한 영원할 수 없다(權不十年). 때가 되면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승리했다고 해도 언제까지 갈 것처럼 우쭐대고 자만할 이유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절대로 좌절해서도 안 된다.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이다. 엎어지고 뒤집혀도 결단코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있다. 기회는 돌고 도는 것이다. 손자가 말한다. 지금 승리했는가? 지금부터 자신을 낮춰라. 승리자가 아니라 인격자가 되라. 지금 실패했는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라. 패배자가 아니라 도전자가 돼라. 승자건 패자건 전승불복의 깊은 의미를 언제나 가슴에 새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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