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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심리

중앙선데이 2012.04.15 01:32 266호 1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실제로는 잔인한 충동의 포로가 돼 있으면서도 상대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강간이나 살인도 일종의 충동조절장애라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애완동물을 괴롭히다가 가정폭력범이 되고, 종국에는 잔인한 범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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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 중에는 충동장애와 유사한 정서상태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내가 남인 것처럼 느끼는 이인감(depersonalilzation), 불안, 초조, 병적 고양감(elation), 죄를 저지른 후 긴장의 이완(release)도 경험한다. 잔인한 범죄자의 경우 전전두엽, 시상하부, 변연계, 측두엽의 병변, 유전자나 염색체 이상이나 망간·납·카드뮴 등의 체내 독성물질, 테스토스테론, 아드레날린, 낮은 세로토닌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게 범죄의 결과 때문인지, 원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정신병적 상태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계획되고 반복적인 범죄라면 지능이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 폭력적 환경에서 성장하고 부모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립돼 살지만 주변에 철저히 위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애정에 대한 보상으로 변태적 성생활이나 습관적인 성매수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융 분석심리학은 이 같은 극단적 범죄자들의 원시적· 신화적 정신세계에 주목한다. 예컨대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들을 차례로 삼킨 그리스의 크로노스 신, 형인 오시리스를 살해한 후 시체를 14개 토막으로 잘라 들판에 뿌린 이집트의 세트 신이나, 남편과 결혼하려는 공주,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전처의 아들까지 죽이려 했던 메디아, 불경에 나오는 앙굴리말라, 야마라지 같은 연쇄살인범은 인간의 파괴적 측면이 구체화된 캐릭터들이다.

역사에 존재하는 이들도 있다. 개국공신 한신과 팽월, 남편의 친척을 모두 죽이고 시앗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귀를 멀게 해 돼지우리에 던진 여태후, 딸·남편의 처첩·관리들·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측천무후, 14명의 눈과 이를 빼고 입을 찢고 얼굴을 깨 살해한 후 재산을 빼앗은 19세기 한국의 해적 김수온 등이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 창녀들의 신체가 훼손된 채 발견된 사건(Jack the Ripper), 산 채로 27명의 신체를 훼손하고 남은 뼈를 팔았던 독일의 사건(The butcher of Hanover)도 유명하다.

예술에서도 아르스 모리엔디(죽음의 기술),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등 살인과 죽음의 모티프는 무수하게 등장한다. 무의식 속 어두운 본능적 충동이 그만큼 완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꿈이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끔찍한 장면들이 현실로 들어와 자제력을 잃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짐승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의 잔인성을 의식하고 본능을 절제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연쇄살인범들은 기존 사회구조가 해체되는 전환기에 주로 일어났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이민자 범죄들도 변화 때문에 겪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가정의 붕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진 이들을 보듬어줄 공간이 없다는 얘기다. 공통체로서의 연대감과 윤리의식, 마지막 피난처인 가정이 속속 파괴돼가는 것이 혹시 한 시대를 마감하는 조짐은 아닌지 걱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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