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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재임하며 고객 차별 마케팅 등 車 혁신 주도

중앙선데이 2012.04.15 00:59 266호 24면 지면보기
GM의 최고경영자(CEO) 이력은 쟁쟁하다. 1990년대까지 하버드 대학 MBA의 20~30%가 GM에 입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최고경영진은 하버드를 비롯해 미 동부 명문 사립대 아이비리그 출신이 주류였다. 포드가 디트로이트와 미시간주를 배후에 둔 보수적 기업이라면 GM은 뉴요커 스타일이었다. 제조업체 가운데 급여ㆍ복지 면에서 단연 최상급이었다.

GM이 낳은 ‘경영의 신’ 앨프리드 슬론 사장

역대 CEO 가운데 창업자 듀런트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경영의 신’으로 불린 앨프리드 슬론이다. 1895년 MIT대 전기공학과 최연소(20세) 졸업자로, 부친 돈을 빌려 파산 직전의 자동차 베어링 회사를 사들여 업계에 뛰어든다. 1916년 이 회사를 GM이 인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두 차례 부도 위기를 겪은 창업자 듀런트가 23년 사임하자 슬론이 CEO에 발탁됐다. 당시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포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슬론이 재임하던 34년간 미국 경영학의 역사를 새로 썼다. 금융권에서나 쓰이던 투자수익률(ROI) 개념을 도입해 자동차 할부금융으로 대박을 냈다. 소비자를 계층별로 나눠 차별화하는 현대식 마케팅도 등장했다. 포드가 20세기 초반에 부동의 1위에 오른 비결은 동일한 디자인ㆍ옵션에 검은색 도색 일색인 T형을 싸게 대량 생산한 것이었다. 당시 봉급생활자가 대여섯 달치 급여로 구매 가능했다. 슬론은 색상뿐 아니라 디자인이 다른 다양한 신차를 내놓으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소득 하위부터 상류층까지 모두 GM으로 흡수해 ‘1가구 1차’가 아니라 ‘1인 1차’ 시대를 연 것이다.

GM은 60년대에는 영업이익률이 무려 20%에 근접했다. 이런 성장세는 90년대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 150군데 조립공장에서 35만 명의 종업원이 일할 정도의 생산 규모는 제조업체 사상 아직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모교인 MIT는 그의 업적을 기려 경영대학원 이름을 ‘슬론(sloan) 스쿨’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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