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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F1, 터프가이의 파트너

중앙선데이 2012.04.14 01:11 266호 26면 지면보기
위블로의 홍보대사인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
지난달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계보석박람회 ‘바젤월드 2012’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가 등장했다. 총 14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1282개가 촘촘히 박힌 위블로의 ‘빅뱅(Big Bang)’이다. 17명이 14개월에 걸쳐 제작한 시계의 가격은 500만 달러(약 56억원). 경매를 제외한 신상품 출시 가격으로 역대 최고가다. 위블로의 장 클로드 비버 회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더 비싼 시계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로 덮을 수 있는) 시계 표면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란다. 시계는 싱가포르의 시계소매업체 ‘아워 글래스’에 팔렸다.

브랜드 시그너처 <19·끝>HUBLOT

위블로는 1980년 세상에 나온 브랜드다. 창업자인 카를로 크로코는 이탈리아의 시계보석 기업의 자손이다. 그는 가문에서 독립해 스위스로 터전을 옮기고 자신의 시계 회사 위블로를 차렸다. 위블로(Hublot)는 프랑스어로 현창(舷窓·뱃전의 창문)을 뜻하는 말이다. 위블로 시계의 아이콘이 된 두꺼운 테를 두른 듯한 시계 베젤도 현창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크로코는 베젤 말고도 위블로만의 아이콘을 만들었다. 3년 넘는 연구 끝에 10배 튼튼한 천연 고무로 만든 시곗줄이다. 지금이야 세라믹 소재로도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만들지만, 당시만 해도 금과 고무는 어울릴 수 없는 조합으로 여겨졌다. 1980년 바젤월드에 데뷔한 첫날 반응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위블로의 시도는 이내 고객을 끌어들였고 첫해 매출이 200만 달러에 달했다.

블랙 러버 스트랩의 빅뱅 골드.
크로코가 새로운 시계 브랜드를 만들어냈다면 장 클로드 비버는 여러 브랜드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는 위블로를 세계적으로 키워냈다.
오데마 피게의 유럽 담당 세일즈 매니저로 시계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스위스 시계산업을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1970년대 스위스 시계는 일본의 쿼츠 바람으로 휘청거렸다. 이때 오메가에 근무하던 그는 친구와 함께 블랑팡을 인수했다. 1735년 탄생한 블랑팡은 1970년대 명맥이 끊겨버린 브랜드. 그는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쿼츠 시계를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굳은 신념으로 기계식 시계를 되살려냈다. 블랑팡은 단숨에 최고급의 명성을 찾았고 스와치 그룹에 편입됐다. 죽은 브랜드를 무덤에서 끌어낸 그가 크로코를 만났고, 2004년 위블로의 CEO로 취임한 것이다.

그는 취임 이듬해 바젤에서 위블로를 대표하는 ‘빅뱅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다. 한 해 동안 주문이 세 배 이상 늘었고, 제네바 워치메이킹 그랑프리에서 디자인상을 받는 등 상복도 잇따랐다. 2004년 26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08년 3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2008년 위블로는 LVMH에 인수됐다. 더 큰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LVMH와 손을 잡았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었다.

역시나 든든한 모(母)기업을 두고 위블로는 더 공격적이고 전방위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유서 깊은 시계 브랜드가 조용하게 폴로·요트·골프 등 ‘부자 스포츠’에 국한된 홍보를 하는 데 반해 위블로는 축구·레이싱처럼 역동적인 스포츠를 선택했다. F1과는 무기한으로 파트너 계약을 맺었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이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공식 타임키퍼로 FIFA와 계약을 맺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도 공식 파트너십을 맺었다.

위블로는 30년간 단 하나의 컬렉션 ‘빅뱅’으로 승부했다. 디자인과 품질이 우수하다 해도 새 컬렉션 없이 ‘에디션’만 선보이는 건 팬과 업계의 원성을 살 수 있는 일. 이에 대해 비버는 이런 답을 했다.

“어떻게 하면 1년에 시계를 서너 개씩 사는 사람이 계속 사게 만들 것인가. 아이르톤 세나(Ayrton Senna·브라질 출신 카레이서. 34세에 요절한 F1의 전설)를 기리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드는 것이다. 알링기(스위스의 요트팀)나 맨유 시계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것들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특별함이 있다.”
새 컬렉션 없이도 이야기를 지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고객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마케팅 천재의 자신감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기술과 예술로 점잖게만 승부하던 시계업계에서 늘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매니어 사이에서도 “위블로는 명품인가”라는 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고작 30년 된 브랜드 아닌가.

“이제 위블로는 겨우 읽고 쓰는 어린이일 뿐이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까지 긴 여정이 우리 앞에 있다.”
비버 회장의 말이다. 위블로는 불과 30년 만에 100년 브랜드 부럽지 않은 대중적 인기와 명성을 쌓았다. 아직 아이일지는 몰라도 보통 아이는 아니라는 뜻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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