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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 할머니

중앙선데이 2012.04.14 00:16 266호 38면 지면보기
8층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쓰레기 재활용 분리를 하다 경비하는 분에게 지나가는 인사로 물었다. “요즘 8층 할머니 안 보이시던데 혹시 편찮으신 걸까요?” 경비하는 분은 과일 박스를 발로 콱 밟으며 잠시 허공을 본다.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넘었죠, 아마.” 나는 괜히 머쓱해져 털 것도 없는 손을 툭툭 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내가 8층 할머니를 알게 된 건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플라스틱 음식물찌꺼기 통을 든 할머니가 서 계셨다. 아마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산 사람이라면 대개 나처럼 할머니를 좋아할 것이다. 내가 목례를 하자 할머니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촌색시처럼 수줍어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수줍어하는지. 나는 할머니가 나보다 위층에 사시는 줄 알았다.

며칠 뒤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할머니를 만나고, 그렇게 일주일이면 한두 번은 할머니를 만나면서 나는 알게 됐다. 할머니의 부끄러움을. 할머니는 8층에 살고 음식물찌꺼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자면 엘리베이터를 부를 때 역삼각형 내림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할머니는 매번 오름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매번 내가 사는 19층까지 올라오거나 더 높은 층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신다. 할머니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게 부끄럽다. 냄새 나는 음식물찌꺼기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엘리베이터 같은 사물 하나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쩔쩔매는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다.

한번은 어디 다녀오시는지 보따리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아파트 앞에서 봤다. 나는 짐을 들어 드리려고 할머니 쪽으로 가다가 들었다. 할머니가 살짝 뀌신 방귀 소리를. 눈치도 없이 내가 “할머니 짐 제가 들어 드릴게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 그러신 건지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힘도 나보다 더 센 것 같았다.

또 한번은 빵을 사러 가다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 연두색 누빈 겉옷이 겨울햇살에 화사했다. 나는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안 추우세요?” 할머니는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볕이 참 좋아요. 벌써 봄이 온 것 같네.” 햇볕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할머니도 참. 2월인데 봄은 한참 멀었죠. 바람이 찬데 어서 댁에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웃기만 하셨다.

결국 할머니는 이번 봄을 못 누리고 돌아가신 셈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오름 버튼과 내림 버튼을 물끄러미 본다. 어쩌면 할머니는 사물은 부리는 거라 여기신 것은 아닐까. 내가 ‘올라가겠다’ ‘내려가겠다’를 엘리베이터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 대고 내가 내려가야겠으니 네가 좀 올라와야겠다 하며 부리신 것 아닐까. 도무지 할머니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엘리베이터에다 대고 말이다.

‘돌아가시다’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세상을 버리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8층 할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역삼각형 내림 버튼을 누른다. 8층 할머니처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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