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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들

중앙선데이 2012.04.14 00:13 266호 36면 지면보기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란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脩)가 한 말인데, 안락한 삶에 파묻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내다 보면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 없고, 좋은 시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조지 오웰만큼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작가도 드물다. 그는 어려운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문제를 절실하게 체험했고, 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스페인 내전은 오웰의 삶에서 바로 ‘궁’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됐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0>『카탈로니아 찬가』와 조지 오웰


오웰은 우리에게 『동물농장』(1945)과 『1984』(1949)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두 작품의 출발점은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1938)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지 않고는 그가 왜 『동물농장』과 『1984』를 썼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자 그해 12월 스페인으로 달려간다.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목적 하나로 그는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통일노동자당 산하의 의용군에 들어간다. “나는 신문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으로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코 반란군에 맞서는 공화파 군대 안에는 심각한 알력이 있었고, 소련 스탈린 정권의 배후 조종을 받는 스페인 공산당은 통일노동자당을 불법화한다. 오웰이 전선에서 목에 총상을 입고 후송된 직후였다. “나는 줄곧 되뇌었다. 왜 나를 잡아간단 말이야? 무슨 짓을 했길래? 아내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범죄자 검거가 아니다. 단지 공포정치일 뿐이다. 당신은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주의라는 죄를 지었다.”

전선에서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와중에 오웰은 아내와 함께 가까스로 스페인을 탈출한다. 그는 분노한다. 스페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설렘과 해방감이 이제 두려움과 실망감으로 끝나버린 것이었다.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여섯 달 전만 해도 프롤레타리아처럼 보여야 존경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부르주아처럼 보이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오웰은 스페인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감출 수 없는 진실과 불의를 고발하기 위해 책을 쓴다. “나는 당시 영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한 가지 사실, 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그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처럼 만가(輓歌)가 아니라 찬가(讚歌)로 읽혀야 한다. 비록 패배했고 환멸에 몸서리칠지언정 그래도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입대하기 전날 이탈리아인 의용병과 마주친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살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내던질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가 오웰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자 첫눈에 호감을 느낀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언어와 관습의 간극을 뛰어넘어 순간적으로 완전히 밀착된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그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 대한 첫인상을 유지하려면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1월의 추운 새벽 꽁꽁 언 몸으로 경계근무를 설 때의 모습이다. “이따금 우리 뒤편 봉우리들 뒤로 동이 트면서 가느다란 황금색 빛줄기들이 검처럼 어둠을 가르고, 이어서 빛이 밝아지면서 가없이 펼쳐진 구름바다가 붉게 물들 때, 그 광경은 설사 밤을 꼬박 새우고 난 뒤 무릎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앞으로 세 시간은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해질 때라도, 한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 짧은 전쟁 기간 동안 인생의 나머지 기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일출을 보았다.” 그는 분명히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다만 너무 느리게 왔을 뿐이다.

오웰이 7개월 만에 영국으로 돌아와 보니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아무도 전쟁을 걱정하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 그대로였다. 그는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에 화들짝 놀라기 전까지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 책이 나온 지 1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영국은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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