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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과 풍악에 비길쏘냐, 승기아탕

중앙선데이 2012.04.14 00:04 266호 32면 지면보기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는 생선 중에 농어가 있다. 봄과 여름에 얕은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와 가을에 바다로 돌아간다. 그래서 음력 4월에서 5월 사이에 많이 잡히고 또 이때가 가장 맛이 있다. 입은 크고 비늘이 작은 거구세린(巨口細鱗)이다. 흑색의 것을 노(盧)라 하는데, 보통 4~5년 자라면 크기가 1자 5치 정도 된다. 고기는 백질(白質)이지만 겉에 흑점(黑点)이 있어 농어라 했다.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본 제철 수라상 <19·끝> 농어

농어는 회로 하거나, 탕으로 하거나, 소금을 뿌려 구이로 해도 맛이 있다. 구이는 어디까지나 즉석에서 소금을 뿌려 구운 생물구이이지 장기간 염장시킨 염장 농어구이는 아니다. 생물을 선호하는 까닭에 농어는 고급 생선에 속한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라온다면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런지 백성들에게 부과시킨 진공(進貢) 항목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궁중에서 필요한 농어는 어떻게 조달했을까. 그것은 국가에서 관리하던 어장(漁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 ‘강화부’의 ‘영종토산’ 항목에 농어가 기록돼 있다. 국가 소유의 어장이 있는 강화부에서 잡은 농어가 사옹원(司饔院·궁중 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조달되었을 것이다.
농어를 탕 재료로 사용한 대표적인 찬품은 ‘승기아탕(勝只雅湯)’이다.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여자(只)와 음악(雅·아악)을 능가(勝)하는 탕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냄비전골로 1848년 궁중 진연(進宴)에서도 주칠소원반(朱漆小圓盤·붉은 칠을 한 작은 원반) 위에 풍로(風爐)를 올려놓고 그 위에 냄비를 얹은 다음 농어 등을 넣고 즉석에서 끓여 먹었다.

전골은 전철(煎鐵·철에다 지지고 끓였다는 뜻)의 변형된 단어다. 그러니까 철로 만든 냄비를 사용해 끓인 음식이 냄비전골이 되는 셈이다. 냄비의 형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여러 설이 있다. 이토정(李土亭·1517~1578) 선생은 항상 철로 만든 관을 쓰고 다니다가 고기나 생선을 얻으면 머리에 썼던 철관(鐵冠)을 벗어 끓여 먹었다. 선생의 별호(別號)가 철관자(鐵冠子)가 된 이유다. 이 벙거지 형태는 유득공(1749~?)이 지은 『경도잡지』에 잘 나타나 있다. “냄비 이름에 전립투(氈笠套)라는 것이 있다. 벙거지 모양에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채소는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담아 지지고 변두리의 편편한 곳에는 고기(생선)를 지진다. 술안주나 반찬에 모두 좋다.”

이 글을 보면 전골(氈骨)이란 전립 또는 전립골(氈笠骨)이라 부르는 벙거지에서 유래한다. 여러 가지 재료를 날로 쓰기도 하고, 국물이 탁해질 재료나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미리 처리해 여러 재료를 전립골 모양의 남비에 색 맞추어 담아 간을 한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것이 소위 전골이다. 여기서 다시 승기아탕으로 돌아가 보자.
우선 들어가는 재료가 엄청나다. 농어·숭어·고등어·건전복·해삼·생합·생전복·홍합·낙지(이상 해물류), 곤자소니(쇠의 막창)·양·천엽·쇠등골·쇠콩팥·돼지아기집·연계·달걀(이상 수조육류), 도라지·미나리·무·오이·표고버섯·석이버섯·능이버섯·파(이상 채소류), 녹말가루·밀가루(이상 전분류), 밤·호두·은행·잣(이상 과일류), 후춧가루·왜토장·참기름(이상 조미료) 등 푸짐하다.

이 중 농어·숭어·고등어는 전유어감으로 포를 떠서 녹말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전유어로 지져놓고, 무르게 삶은 곤자소니·양·쇠콩팥·돼지아기집은 얇게 저며서 양념하여 놓는다. 미나리는 초대로 만들어 썰어놓고, 도라지·오이·표고버섯·석이버섯·능이버섯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참기름에 살짝 볶은 뒤 전골 냄비에 이상의 것들을 색 맞추어 담는다. 여기에 밤·호두·은행·잣·파를 얹는다. 연계(軟鷄·어린 닭)에 무와 충분한 물을 합쳐 뭉근한 불에 끓여 장국을 만든다. 체에 받쳐 놓은 것에 왜토장으로 간을 맞추어서 육수로 만들어 붓고 풍로에 올려놓고 끓이는데, 한소큼 끓었을 때 건지를 건져 초장에 찍어 먹는다.

어느 정도 건져 먹은 후에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여기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왜토장’은 조선왕조가 일본에 파견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또는 부산왜관을 통해 수입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수육·조육·어육·채소·과일 등을 망라한 다양한 재료도 놀랍지만, 조리방법 또한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실로 음악과 여자를 능가할 만하다. 부엌에서 끓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풍로와 남비를 직접 연회석에 갖고 나와 여럿이 빙 둘러 앉아 먹는 공음공식(共飮共食)의 성격이 짙은 까닭에 화기애애한 모임의 향응 음식으로 각광받았던 듯하다. 반가(班家·양반의 집)에 전해져 승기악탕(勝妓樂湯·기생과 음악을 능가하는 탕)·승가기탕(勝歌妓湯·노래와 기생을 능가하는 탕)·승가기탕(勝佳妓湯·기생을 능가하는 절묘한 탕) 등의 다양한 명칭이 생겨났다.

필자가 재현해 먹어본 결론이지만, 조선왕조에서 생선을 주 재료로 하여 만든 탕을 추복탕·삼어탕·생선화양탕(生鮮花陽湯)·해삼탕(海蔘湯)·용봉탕(龍鳳湯)·금린어탕(錦鱗魚湯)·홍어탕(洪魚湯) 정도로 본다면 이들 탕은 승기아탕의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승기아탕은 그만큼 맛있는 탕이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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