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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장사, 웨이터…입사 27년만에 사장된 비결

중앙일보 2012.04.14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성수 도루코 대표가 ‘페이스 6중 날 면도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도루코는 57년간 칼날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박종근 기자]


1989년 수입 자유화 조치로 외국산 면도기가 국내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질레트와 쉬크였다. 당시 한국에는 도루코를 비롯한 몇 군데에서 면도기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질레트와 쉬크는 세련된 디자인에다 품질과 가격도 좋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유통망을 타고 순식간에 전국에 깔렸다.

[돈과 경제] 파워 중견기업인 … 전성수 도루코 대표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도루코였지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90% 넘던 점유율은 20%대로 뚝 떨어졌다. 초토화였다. 경쟁이라곤 모르다가 갑자기 닥친 일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전성수(53) 도루코 대표는 “순식간에 시장을 90% 가까이 빼앗겼다”고 기억했다. 당시 그는 영업팀으로 옮긴 지 2년쯤 됐다. 입사 후 5년간 경리·회계 업무를 보다가 ‘영업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었다. 대구영업소를 거쳐 광주영업소에 배치돼 재래시장을 주요 거래처로 담당하고 있었다. ‘형님’ ‘아우’ 하며 상인들과 관계를 다져놓았지만, 좋은 물건 앞에선 소용없었다.



 “우리 제품이 품질과 가격 모두 떨어지니 인맥도 안 통했어요. 경쟁 제품은 외국 브랜드인 데도 대기업 유통망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 신제품이 나오면 하루, 이틀이면 전국에 좍 깔렸어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급 시장은 포기하고, 여관이나 목욕탕에 비치하는 일회용 면도기로 근근이 ‘연명’했습니다.”



 면도기 수입 자유화는 예고됐었다. 품목별 유예기간이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첫째는 닥치기 전까진 위기감을 못 느꼈고, 둘째는 기술이 한참 뒤떨어진 데다 자본력도 달려 대비할 수가 없었다”고 전 대표는 회고했다.



 수입 자유화의 거센 파도는 도루코가 겪은 첫 번째 위기였다. 이때 창업주인 고(故) 탁시근 회장(1999년 작고)이 결단을 내렸다. “품질만이 살길”이라는 걸 깨닫고, 오로지 기술 개발에 올인했다. 회사 경영의 모든 우선권을 연구개발(R&D)에 뒀다. 영업조직도 새롭게 확대했다. 기술과 영업에 투자하는 사이 조금씩 시장을 되찾기 시작했다.



 탁 회장은 이북에서 피란 와서 정미업을 하다가 경공업에 눈을 돌렸다. 1955년 동양경금속이란 회사를 세웠다. 국내 최초, 최대 지퍼 회사였다. 이후 면도날 사업이 유망할 것으로 보고 ‘대한도물’이라는 칼날 제조 회사를 인수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산업화가 진행되면 면도기는 필수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처음엔 미군이 쓰던 날을 수거해 검은색 손잡이를 달아 학생용 칼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때마침 정부에서 경공업을 정책적으로 밀 때였다. 낮은 금리로 나랏돈을 빌려 독일에서 면도기 제조 설비를 도입해 면도날 국산화의 길을 열었다.



 ‘도루코(Dorco)’는 동양경금속에서 따온 이름이다. 동양경금속의 앞 글자 ‘do’, 면도기(razor)의 ‘r’, 회사(company)의 ‘co’를 붙여 만들었다. 브랜드로 쓰다가 널리 알려지자 90년 회사명을 아예 도루코로 바꿨다.



 도루코는 설립 57년이 지난 지금도 면도기, 주방용 칼, 산업용 칼이라는 한우물을 파고 있다. 카본 면도날, 스테인리스 면도날을 개발했고, 80년대에는 한 날짜리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었다. 면도기 카트리지 안에 칼날이 한 개 들어 있는 게 ‘한 날’, 두 개 있으면 ‘두 날’ 면도기다.



 면도기 업계는 면도기 카트리지 안에 넣는 날 개수로 경쟁한다. 도루코가 두 날 면도기를 내놨을 때 질레트, 쉬크는 3중 날, 4중 날을 놓고 싸웠다. 이때 도루코는 과감하게 발상의 전환을 했다. 몇 단계 건너뛰어 6중 날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작은 면도기 안에 날 6개를 밀어넣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했다. 얇으면서도 강해 잘 자르는 날을 만들고, 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채워 넣고 구부려 만든다. 전 대표는 “면도날 제조는 정보기술(IT)보다 더한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0.075㎜짜리 강판을 가공해 날을 갈고 코팅하고, 열처리를 해 각을 세우고, 다시 코팅하는 순서를 거친다.



 도루코의 두 번째 위기는 국내 대부분 기업이 겪은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은행에서 대출 회수 압력이 들어오고, 자금 압박이 커졌다. 하지만 시장은 정체되고 매출은 줄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세계 시장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때 다시 한번 기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99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팀 단위였던 R&D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현재 국내 임직원 340명 중 100명이 연구소 소속이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도루코는 매년 매출액의 약 10~15%를 R&D에 투자한다. 지난해 매출액 1680억원 중 약 220억원이 첨단 기계 설비와 연구 지원 등 R&D 지출이었다.



 수입 자유화 조치와 외환위기, 두 차례 외부로부터 닥친 위기가 도루코를 강하게 만든 셈이다.



 위기는 노사가 화합하게 하는 힘도 됐다. 도루코 노조는 한국노총 금속연맹 산하로, 한때는 강성 노조로 이름을 날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978~1980년까지 이 회사(당시 회사명 한일공업)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금속노조 영등포지부장까지 겸하며 이곳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했다. 전 대표는 “사측은 약속을 지키고 노조는 이를 믿고 따라줘서 89년 이후 분규가 한 번도 없다”고 자랑했다.



 회사는 직원의 능력을 키우는 데 과감하게 투자했다. 매년 우수 직원을 뽑아 해외 연수 및 견학을 보낸다. 연간 40~50명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서비스 정신으로 이름난 일본 MK택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아사히맥주와 스미토모금속 생산공장을 견학하는 등 선진 기업을 벤치마킹한다. 또 또래 직원들 간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래프팅·스키·트래킹 등 레저 워크숍도 자주 연다.



 도루코 전체 매출에서 면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88%로 꽤 높다. 전 대표는 “당분간 이 분야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우물만 파도 세계 시장에서 성장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저개발국이 경제 성장을 하면서 수요가 계속해서 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루코는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10년보다 유럽에서 30%, 아시아 20%, 중동 23%, 아프리카 63% 매출이 늘었다. 품질은 좋으면서 글로벌 빅 브랜드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는 걸 현지 유통업자들이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유수의 유통업체 바이어들이 물건을 달라고 찾아오는 통에 공급이 달릴 정도다. 미국 K마트, 프랑스 카르푸, 영국 테스코 등 대형 체인에서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로, 또는 ‘페이스(Pace)’라는 고유 브랜드로 팔린다. 매출의 70%가 해외에서 나온다. 경기도 용인을 비롯해 멕시코·중국·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세계 120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선 질레트(점유율 60%)에 이어 2위(25%)를 지키고 있다. 주방용 식도 분야에서는 약 70%의 압도적 시장 점유로 10%대인 2위와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도루코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건 면도날 제조 설비를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기계와 금형을 직접 제작해 원가를 낮췄다. 원재료도 오랜 거래로 신뢰를 쌓은 덕에 좋은 조건으로 들여온다.



 7~8년 전 본격화한 윤리경영도 한몫했다. 도루코 직원들은 해마다 윤리서약을 한다. 거래업체와 윤리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아무리 소액일지라도 어떤 선물이나 향응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불가피하게 받은 경우에는 회사에 신고한 뒤 기부한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때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적정한 가격과 대우를 당당히 요구한다. 전 대표는 “일 잘할 파트너를 구하는 게 입찰이니,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원가 경쟁력도 올라갔다. ‘인사’를 하기 위해 입찰가를 높게 산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대리점에 일절 선물을 안 하니까, 처음엔 경쟁업체에 밀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인식이 좋아졌습니다.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줘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결국 상생이라는 것을 서로 알게 됐습니다.”



 창업주의 경영철학도 이어가게 됐다. 탁 회장은 직원들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고,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전 대표는 사원으로 입사한 지 27년 만인 2010년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사회를 공부했다.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급격히 가세가 기운 탓도 있지만 워낙 호기심이 왕성했다. 작은 회사에 다니다 옷 장사도 해봤고, 술집에서 술 창고를 봐주고 웨이터도 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때 도루코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면접을 봤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뽑혔다.



 자수성가한 최고경영자(CEO)가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현실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청년들은 눈앞의 이익이나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취업도 그래요. 대기업만 바라보면 어렵다고 하겠지요. 이미 만들어진 것만 바라볼 게 아니라, 내가 회사를 키워갈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을 하든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식당이나 하지’라는 사람보다 ‘대를 이을 식당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크겠지요.”



 현재 그의 목표는 도루코를 2020년까지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현재 점유율은 1.8%. 이미 도루코는 시장의 성장 속도를 앞서고 있다. 최근 5년간 면도기 산업 평균 성장률은 4~6%에 그쳤지만, 도루코는 16% 성장했다.



중앙일보-대한상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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