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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과 한국의 야당, 자기 함정에 빠지다

중앙일보 2012.04.14 00:00 종합 42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 특파원
일대일로 맞서는 사무라이식 결투법. 한국의 총선일인 11일 일본 국회에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와 자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총재의 ‘당수 토론’이 열렸다. ‘당수 토론’은 내각제 정치의 백미(白眉)다. 총리와 야당 총재가 불과 1m 남짓한 거리에 마주 선다. 30분 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쏟아낸다. 정치인의 말발과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보다는 주먹, 토론보다 공중부양과 최루탄이 앞서는 우리 국회에도 ‘당대표 토론’을 도입하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구경꾼들에겐 흥미롭다.



 이번엔 노다가 시종 공세적이었다. 재정건전화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소비세 인상에 정치생명을 걸었다는 노다는 “자민당도 소비세 인상이 옳다면서 왜 흉금을 터놓고 토론하지 못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이에 다니가키 총재는 “(세금을 안 올리겠다던)민주당의 2009년 총선 공약을 먼저 철회하라. 공약을 거짓말로 만드는 일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응수했다.



 기세 좋게 맞받아친 목소리는 우렁찼지만, 다니가키에겐 켕기는 구석이 없지 않다. 자민당이 최근 보여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 때문이다.



 자민당은 그동안 “소비세 인상은 공약 위반이니 먼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라” “민주당 내 증세(增稅) 반대론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와 먼저 결별하라”는 숱한 조건들을 내걸고 민주당의 구애를 외면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한 차기 중의원 선거 공약집엔 “현행 5%인 소비세를 10%로 인상하겠다”는 내용을 버젓이 포함시켰다.



 민주당의 대국민 약속위반을 부각시켜 정권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그건 ‘자기네 사정’ ‘진영 내부의 정치공학’일 뿐이다. “노다의 소비세 10%는 안 되고, 자민당의 소비세 10%는 옳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을 리 없다. 이러니 민주당의 무능만큼 야당 자민당의 무책임이 함께 부각된다. 민주당 내각의 지지율이 ‘정권유지의 마지노선’인 20% 가까이까지 떨어져도 자민당 역시 대안세력으로 박수를 받지 못한다.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진 한국의 총선은 집권 새누리당의 뒤집기로 끝났다. 새누리당의 대역전승에 기여한 최고의 공신은 한국의 야당이다. 특히 김용민 후보의 막말 저질 발언에 대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했다는 대국민 사과는 압권이다. ‘김 후보의 발언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잘못됐고, 국민들에게도 거듭 죄송하고, 다른 후보들에게도 송구하다. 하지만 김 후보는 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정권 심판이 중요하니 그래도 우리를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글은 사과라기보다는 국민 무시의 전형이다.



 총선 승리와 12월 대선을 위해선 ‘나꼼수’ 세력을 내칠 수 없다는 그들만의 정치공학에 빠져 있는 사이 보통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조용히 등을 돌렸다.



 정권 탈환을 꿈꾸는 일본의 자민당과 한국의 야당은 서로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국민들은 그들보다 조용하지만 훨씬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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