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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포기할 수 있다면, 그건 꿈이 아니야

중앙선데이 2012.04.13 23:42 266호 18면 지면보기
2012년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될 만화는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2008년부터 만화잡지 ‘모닝’에 연재 중이며, 단행본 누계 발행부수 700만 부를 기록한 고야마 주야의 ‘우주형제(宇宙兄弟·사진)’다. 지난해 권위 있는 쇼가쿠칸 만화상과 고단샤 만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 작품은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1일부터 니혼TV를 통해 방송 중이다. 5월 5일에는 인기배우 오구리 슌이 주연을 맡은 실사영화도 개봉한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 문화 <끝> : 화제 만화 ‘우주형제'

‘우주형제’는 제목 그대로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형제의 이야기다. 열세 살, 열 살 소년이던 2006년 신비한 비행물체를 발견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 형 뭇타와 동생 히비토. 시간이 흘러 2025년, 스물아홉의 동생 히비토는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가 돼 ‘최초로 달 표면을 밟는 일본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에 형인 뭇타는 꿈을 포기하고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으나 정리해고당해 서른한 살에 백수가 됐다. 이런 형에게 동생은 “함께 우주로 가지 않을래?”라고 다시 손을 내민다.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이지만 ‘우주’가 핵심은 아니다. NASA와 JAXA를 철저히 취재해 인류의 우주개발계획 역사와 진행상황을 파헤친 건 그저 보너스다. 이 만화가 진짜 마음을 울리는 건 다른 지점에 있다. 서른이 넘어 실직자가 돼버린 주인공이 “잊은 척을 계속한 탓인지, 진짜 잊어버렸던” 꿈을 다시 조금씩 꺼내놓는 모습,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머뭇머뭇 나아가는 과정이다.

뭇타는 한국에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는 ‘도하의 비극’으로 기억된 1993년 10월 28일 태어났다. 94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두고 카타르 도하에서 이라크와 아시아 지역예선 최종경기를 치른 일본이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한국에 본선 진출권을 넘겨줬던 바로 그 사건. ‘일본인 모두의 탄식과 함께 태어난’ 뭇타는 “내겐 언제나 불운이 따라다닌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우주비행사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동생과 달리 “할 수 있다면,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던 자신감 없는 소년이었고, 열아홉 살쯤 ‘우주비행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으로 꿈을 접었다. 그런 그가 꿈을 이룬 동생을 보며 느끼는 동경과 질투, 그리고 다시 꺼내든 꿈 앞에서 자꾸 움츠러드는 모습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만화에는 밑줄 쫙 긋고 싶은 대사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만약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다면, 그건 꿈이 아니야” “고민이 될 땐 말야, ‘어떤 게 올바른지’ 따윈 생각하면 안 돼. 답은 저 아래, 네 가슴이 알고 있는 법이야. ‘어떤 게 즐거운지’로 결정해” 등등. 이미 ‘꿈’ 같은 단어가 오글오글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구절들이다. 일본 언론들이 이 만화를 “무기력의 시대, 도전을 향해 등을 떠미는 귀한 작품”이라고 평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 일본 문화에 빠져들었던 건, 이런 이야기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100가지가 넘는 만화 잡지에 매주 새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계절이 바뀌면 수십 편의 새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 이 이야기 더미 속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건 내겐 가장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이 ‘즐거운 덕후질’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다. 일본 문화에 빠져 도쿄에서2년간 공부했다. 일본 대중문화를 보고 평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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