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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25> 벌교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

중앙일보 2012.04.13 04:28 Week& 4면 지면보기
1 봄비에 촉촉히 젖은 제석산 자락. 대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아담한 소화의 집 뒤로 현 부자네 별장과 제각이 으리으리하게 버티고 있다. 한때 일대에 터널을 이뤘다는 벚나무가 드문드문 남아 아스라한 옛 명맥을 잇고 있었다.



소화가 저 길 걸어갈 때, 벚꽃이 눈처럼 날렸을 거야

벌교읍이 전남 보성군에 속한 건 몰라도 ‘벌교 꼬막’은 다 안다. “핏기만 가시도록 데쳐낸 겨울 꼬막은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 조정래(69) 작가가 쓴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군침 도는 구절이다.



그는 유년기 한 자락을 벌교에서 보냈다. ‘민초를 실은 뗏목다리(벌교·筏橋)’는 해방과 분단의 격랑 속에서 어지러이 표류했다. 1983년부터 6년 동안 조정래 작가는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온몸으로 썼다. 1948년 빨치산이 전남 여수·순천에서 무력 봉기한 여순사건부터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선포된 53년까지의 벌교 자체를 소설 안에 재현했다. 열 권 분량의 『태백산맥』은 1000만 부 이상 팔렸고, 해마다 1만여 명이 소설의 자취를 좇아 벌교를 찾아들었다.



지난해 보성군은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8㎞)을 정식으로 출범했다. 옛길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없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소설의 감동과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문화 트레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이 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글=나원정 기자



2 벌교읍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인 장도 사이를 하루 한 번씩 오간다는 ‘수미호’. 35년 전 출항한 ‘초대 수미호’는 목선(木船)이었다고 한다. 3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김범우의 집 별채. 4 보물로 지정된 홍교. 벌교에서는 ‘다리’를 덧붙여 ‘횡갯다리’라고 부른다.
# 역사와 소설이 만나 빚은 길



본디 벌교는 낙안벌 끄트머리에 놓인 빈궁한 갯마을이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에 상황이 돌변했다. 바다고 뭍이고 사통팔달한 지금의 벌교 일대는 일제가 호남평야의 풍족한 곡물을 수탈하기에 제격이었다. 1915년 보성군 고상면과 남면을 합쳐 벌교면이 조성됐고 37년에 읍으로 승격됐다. 벌교에 검은 판자벽과 함석지붕을 두른 적산가옥이 지금도 적잖이 남아 있는 연유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왈짜 염상구가 장악한 청년단 건물의 공중목욕탕이나, 널찍한 다다미방이 있던 남도여관도 벌교 읍내에 실제로 있던 건물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남도여관의 모델이 된 보성여관은 아직도 옛 모습에 가깝게 벌교의 본정통(本町通)을 지키고 있다.



 벌교역과 차부(시외버스터미널)를 중심으로 교통 요지가 형성되면서 상업도 발달했다. 돈이 돌자 힘깨나 쓴다는 왈짜패도 등장했다.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라’는 풍문도 이즈음부터 돌지 않았을까. “벌교에는 깡패 없다”고 한사코 손사래 치는 점잖은 노인도 “새끼 머슴이 일본 헌병을 죽게 패줬다”는 이야기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목청을 높이는 걸 보면 아주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다.



 광복 후 여순사건이 발발하면서 여수·순천을 중심으로 벌교까지 빨치산 세력이 거세게 일어났다. 소설에서 빨치산에게 배신자로 찍히면 민간인도 가차없이 총살했던 소화다리 근처는 실제로 인민재판이 빈번했던 곳이다. 일왕 소화(昭和) 즉위 6년(1931년)에 설립했다고 해서 소화다리다. 소설이 마냥 허구는 아니었다.



 열 살 무렵의 조정래가 벌교로 이사를 온 건 여순사건 얼마 뒤인 1950년대 초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진학 전까지 소년은 읍내에서, 시장통에서 훗날 『태백산맥』의 모태가 되는 갖가지 사연을 주워 들었다. 빨치산 남편을 둔 죄로 청년단장에게 겁탈당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아낙의 딱한 처지는 소설에서 염상구에서 변을 당한 외서댁 이야기로 부활했다. 『태백산맥』을 다섯 번 넘게 읽었다는 벌교 토박이 왕봉민(64)씨는 “본정통의 진짜 술도가 주인도 소설 속 술도가 주인 정현동처럼 성이 정씨라서 정현동이 소작인에게 변고를 당하는 결말을 영 찜찜해 했다”고 귀띔했다.



 해방 정국 벌교에서 싹튼 허구는 언젠가부터 다시 현실로 되살아나고 있다. 누군가가 『태백산맥』에 등장한 장소를 두 발로 찾아다니면서부터다. 지난해 보성군은 『태백산맥』 속 주요 무대를 잇는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을 조성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출발해 벌교 읍내를 휘돌았다가 진트재로 이르는 길을 넓히고 닦았다. 길은 그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역사와 허구를 은근하게 엮어내 길에 스토리를 입혔다.



# 옛 정취 찾아 발길 닿는 대로



동틀 무렵이었는데 벌교역 부근은 벌써 붐볐다. 마침 5일장이 열린 날이었다. 벌교 앞바다 장도에서 넘어온 아낙이 꼬막 흥정에 한창이었다. 참꼬막이 1㎏에 1만3000원쯤 했다.



 염상구가 깡패 두목 ‘땅벌’과 주먹다짐을 했던 철다리를 건넜다. 중도방죽을 따라 밀물이 흘러들었다.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中島·중도)는 조선인 빈농을 부려 갯벌에 방죽을 쌓고 전답을 늘렸다. 깊이를 모르는 갯벌에 수없이 돌을 던져 넣었던 피땀의 대가는 소작을 부칠 권리, 소작권이었다. 소설에서 소작권을 따낸 하판석 노인은 아들 하대치를 가르쳤고, 훗날 하대치는 지주의 부당한 대우에 반발해 빨치산이 됐다. 소금기 머금은 강풍이 휘몰아치며 억새 사이로 새된 비명소리가 났다.



 벌교상고(현 벌교제일고) 뒤편 제석산 끝자락으로 향했다. 현부자네 별장과 제각, 소화의 집 사이로 『태백산맥』의 첫 장면이 연상되는 산길이 나왔다. 소설에서 새벽 미명 아래 술도가 아들 정하섭은 무녀 소화의 집에 숨어든다. 소화는 ‘흰 꽃’(素花)을 뜻하는 이름처럼 빨치산인 정하섭의 다급한 부탁을 가만히 들어줬다.



 조릿대 숲이 우거졌던 산길은 이제 널찍한 산책로의 모습이었다. 빨치산과 무녀의 사랑 이야기가 은밀히 깃들 틈조차 없어 보였다. 실제로 100년 전 벌교 부자 박씨 문중의 소유였다는 현부자네 별장과 제각은 보성군 소유로 관리되어 새것처럼 반질반질했다. 20~30년 전만 해도 봄이 되면 별장으로 가는 길목부터 별장 안까지 일본의 상징 ‘사쿠라(벚꽃)’가 터널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은 별장과 수령이 거의 비슷한 동백나무만 굳건히 남아 있었다.



 벌교천변을 따라 낙안읍성 방향으로 20분쯤 걸으니 홍교(虹橋)에 다다랐다. 『태백산맥』의 또 다른 지주 김범우의 집에 들어갔다.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느껴지는 옛집이었다. 집주인이 노환으로 몇 년째 집을 비우고 있다고 했다. 뒷담은 진즉 주저앉았고 빈 솥이며 장독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그러나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마당에 핀 홍매와 청매 때문이었을까. 억지로 광을 낸 태가 없어 외려 마음이 편했다. 조정래 작가가 초등학교 시절 ‘사탕까리 뿌린 누룽지’를 나눠 먹던 친구네 집이었던 곳이어서 더 정이 갔는지 모르겠다.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에서 정해진 코스는 없었다. 고만고만한 거리이므로 작품에서 솔깃했던 장면을 되밟아 가면 그만이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현부자네 별장과 김범우의 집, 홍교를 건너 자애병원(현 벌교어린이집)에서 다시 남도여관, 중도방죽에서 진트재로 이르는 8㎞ 길은 어디서 시작하건 어떻게 쉬어가건 상관이 없었다.



 보성군이 올해 말까지 완공한다는 벌교천변 산책로 공사 탓에 문득 소설 속에서 깨어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천변에 늘어선 목련 꽃향기가 조급한 마음을 풀어줬다. 벌교천을 내려다보며 빨치산과 우익 어디에도 들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갔던 민초의 주검을 떠올렸다. 불현듯 벌교천 위로 흰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을 걷는 건 소설과 현실을 경계 없이 오가는 일이었다.



●길 정보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은 모두 8㎞로 이뤄져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소화다리~벌교 읍내~벌교역~중도방죽~진트재(진토재)에 이르는 길은 걸으면 넉넉잡아 세 시간 안팎이다. 벌교북초교에서 부용산에 올라 벌교공원으로 향하는 ‘부용산 오리길’은 정취가 각별하다. 20명 이상 단체는 문화관광해설사를 신청할 수 있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850-5213.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 안내도가 비치된 태백산맥 문학관(tbsm.boseong.go.kr)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성인 2000원. 061-858-2992. 6월부터 남도여관(옛 보성여관)이 영업을 재개한다. 2~3인용부터 5~6인용까지 모두 7개 객실을 운영한다. 벌교 하면 꼬막이다. 매콤하게 버무린 꼬막회무침과 된장을 푼 꼬막탕, 삶은 통꼬막, 꼬막전 등이 나오는 꼬막정식은 벌교 읍내 웬만한 식당에서 다 판다. 꼬막정식은 대부분 1만5000원(1인분)이다. 꼬막회무침을 먹고 참기름을 뿌려 밥을 비벼먹는 게 별미다. ‘거시기 꼬막식당’(061-858-2255), ‘원조꼬막회관’(061-857-9919), ‘다성촌’(061-857-1503) 등이 유난히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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