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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48) 일본 치과의사 다카토우 마코토의 전라도 기행

중앙일보 2012.04.13 04:25 Week& 7면 지면보기
생각지 못한 만남도 있었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내게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안부를 물었다.

18년 간 100번 넘게 여행 … 전주에선 피순대 꼭 챙겨먹죠



‘내 선조가 백제인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국을 100번 넘게 여행하며 다닌 길이 어느덧 지도를 전부 메울 정도가 됐다.
내가 처음 한국에 온 건 1995년 가을이다. 미국에서 알게 된 치과의사 이준규(65)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풍토와 음식, 정서 등 모든 게 내 마음에 들었다. 90년대 말부터 두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다 보니 18년간 100번도 넘게 한국에 왔다.



 물론 한국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유난히 전라도 출신 친구가 많았다. 내가 한국을 여행하며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든 곳도 전라도다. 전라도는 과거 백제 땅이었다. 일본에는 백제의 문화와 기술이 많이 전래됐다는데 ‘내 선조가 백제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년 전에는 전북 남원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아침 일찍 일본을 떠나 전북 전주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전주는 내가 좋아해서 즐겨 찾는 도시다. 이제는 손바닥 안처럼 훤한 풍남문과 남부시장을 걸었다. 저녁 식사는 고기와 두부 따위를 선지에 버무려 돼지 창자에 채운 전주 명물 ‘피순대’로 대신했다.



 이튿날 기차를 타고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은 고전소설 『춘향전』의 배경인 광한루로 유명한데, 전에 가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흥부전』의 배경인 남원시 운봉읍을 돌아보기로 했다.



 운봉읍 ‘황산대첩비 파비각’에 들러 잠시 묵례를 했다. 황산대첩비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한 황산대첩을 기린 비석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폭파됐다고 했다. 1957년 한국 정부는 파손된 비석을 한데 모아 비각을 세웠고, 그걸 파비각이라고 불렀다. 다른 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파괴하다니, 일본인으로서 참으로 면목이 없었다.



 운봉읍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향교동 ‘만인의총’으로 향했다. 만인의총은 임진왜란 중 조선과 일본의 교섭이 결렬되어 1597년 재차 발발한 정유재란 때 생긴 무덤이다. 당시 남원성을 지키다 전사한 조선 군관민이 여기에 합장됐다.



 내가 만인의총을 찾은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여러 해 전 이준규씨가 지인과 함께 일본에 온 적이 있다. 내가 교토와 오사카 지역을 안내했는데, 그들은 가장 먼저 교토의 ‘미미즈카(耳塚·귀무덤)’에 가고 싶어 했다. 미미즈카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이 남원성에서 희생당한 조선인의 귀와 코를 잘라 소금에 절인 뒤 교토로 가져와 무덤처럼 쌓아 올린 것이다. 남원 출신인 친구는 한국에서 직접 마련해 온 술을 잔에 따르고 절을 올렸다. 그걸 보고 나도 남원에 가면 만인의총을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인의총 입구 주차장에서 계단 수십 개를 오르고 많은 문을 지나자, 파란 하늘 아래 만인의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에 이름을 쓴 뒤 발길을 돌렸다.



관광지 아닌 일상적 공간이 한국의 매력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은 첫인상부터 친근했다. 그래서 첫 한국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나는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됐다. 97년엔 군산과 전주·대전 등을 돌아봤고, 98년엔 전남 여수를 출발해 보성군 벌교읍을 밟은 다음 목포 유달산에 올랐다.



 관광지를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생겼다. 3년 전 서울 노량진 근린공원에 갔을 때다. 나는 공원 산책로를 따라 인근 야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한국에는 산에서 운동을 하는 노인이 많다. 나무가 빽빽한 정상에 이르자, 운동복을 입은 멋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아주머니 무리에 둘러싸여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도 할아버지 곁에 앉아 일본 여행객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나카소네(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잘 지내는가?”라고 물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이분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귀띔했다. 나는 서둘러 무례함을 사과하고 김 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는 한국의 일상적인 공간이 좋다. 보통의 일본인인 내가 보통의 한국을 만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한국은 도시든 시골이든 일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 사이에서 아주 작은 차이점을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한국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다카토우 마코토(高頭誠)



1956년 일본 도쿄 출생. 95년 처음 한국에 온 뒤 열렬한 한국 팬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한국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아내 자신의 블로그(takatoorthod.way-nifty.com)에 연재하고 있다. 대한치과교정학회 외국인 정회원 1호다. 현재 일본 니가타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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