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③ 맹사성의 중용 리더십

중앙일보 2012.04.13 03:40 6면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인맥보다 친화력으로 대인관계 성공 이끌어

장찬우 기자





맹사성 [孟思誠, 1360~1438]



고불 맹사성은 1360년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으며, 최영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386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세종대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의 반열에 올랐다.





맹사성은 온전히 자수성가한 인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정치적인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들이 많았다. 고불은 그의 부친의 후배이자 조선 초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권근으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맹사성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많은 도움을 줬다.



이 밖에도 영의정 성석린과 고불에게서 글을 배운 양녕대군도, 고불이 사헌부 대서헌으로 재직하면서 조대림 사건으로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극형을 선고받았을 때 태종에게 눈물어린 상소로 고불의 생명을 구해줬다.



맹사성이 보여준 중용적 리더십의 특징을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청백리 정신과 겸손에 바탕을 둔 커뮤니케이션의 마술사라 칭할 수 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예가 너무도 많기에, 고불의 리더십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원론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다.



그가 능력을 발휘하게 된 세종대 전까지, 고불은 참으로 많은 위기를 맞이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위기 때마다 그의 지인들과 그를 아끼거나 존경했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일처럼 그의 목숨을 지켜줬다. 그래서 그는 정치인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정도의 삶을 추구했던 맹사성의 ‘청백리정신’은 그의 인생철학을 함축하고 있다. 황금을 멀리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했고, 특정의 정치세력과 연대를 꾀하기보다 다양한 정치세력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그의 친화력도 눈 여겨 볼만하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 인근 맹사성 고택에 있는 세덕사. 맹사성과 부친, 조부 등 맹씨 3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사당이다. [사진 이영관 교수]


  친화력이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의미하며, 대인관계를 성공으로 이끄는 원천으로서 전문가의 중용 및 경청, 봉사와 관용의 서번트 리더십, 배려와 감사, 설득력의 원천인 유머 등이 핵심적인 구성요인이다.



보편적으로 인간들은 인맥을 동원해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하지만, 적과 동지가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는 권력구조의 특성을 감안해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조선을 빛낸 영웅들 중에 인맥을 동원해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단호히 배격했던 인물들이 많았다. 자신을 위한 당파를 배격하면서 중용의 리더십을 실천한 고불 선생은 사후에도 많은 선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아마도 그를 흠모하던 선비들이 충청도 아산에 위치한 그의 고택(맹씨행단)을 방문했을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선생의 곁에서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을 것이다. 맹사성고택 인근의 설화산 일대에서 가장 풍수가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진 외암리(외암민속마을)에서 외암 이간 등 다수의 유능한 선비들이 배출됐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후손들이 번창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열심인데, 도회지에서 직장생활하면서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헌신했다면, 은퇴 이후에는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후손들에게 명당 터의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호젓한 시골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외암리의 선비들이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은 점도 흥미롭다. 오늘날까지 외암리가 민속마을로 계승돼 오고 있는 근원적인 힘 또한 설화산 너머 외암리의 반대편에서 탐욕을 경계하며 청빈한 삶을 영위했던 맹사성의 영향력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싶다.



맹사성은 공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에만 역마를 활용했고 사적인 용도로는 역마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가끔은 소를 타고 다니기도 했고 걸어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을 만큼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등이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