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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수호신 된 고려 공민왕

중앙일보 2012.04.13 00:00 종합 25면 지면보기
서울 마포에는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서울에서 사당을 지어 기리는 유일한 고려왕이다. 지난해 10월 21일 마포구가 주최한 공민왕사당제례 모습. [사진 마포구청]


중국 원(元)나라 출신의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반원 정책(反元 政策)을 펼친 왕. 원나라 복장과 머리 모양 일색이던 왕실 풍습을 고려의 것으로 과감히 바꾼 개혁군주. 바로 고려의 31대 왕 공민왕(恭愍王·1330~1374년)이다. 그를 받드는 사당이 서울 마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 재발견] 창전동 공민왕 사당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 2-22번지.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느티나무 등 200년도 넘은 고목 다섯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이자 공민왕 사당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사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0원짜리 동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마포문화원 이한동 사무국장은 “소원을 빌러 온 주민들이 던져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231호인 이 사당은 2칸짜리 목조건물이다. 기와지붕을 올린 사당 안에 6개의 무속화가 걸려 있다. 중앙에는 황금색 옷을 입은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의 화상이 , 왼쪽에는 큰 칼을 든 최영 장군의 그림이 있다. 공민왕의 반원 정책에 자극 받아 고려로 쳐들어온 원나라 군사 1만여 명을 이성계 장군과 함께 물리친 영웅이다. 죽어서도 왕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사당 관리를 맡고 있는 마포문화원은 매년 10월 21일이면 인근 주민들과 함께 ‘공민왕사당제례’를 지낸다. 공민왕의 후손인 개성 왕씨 종친회에서도 참여한다. 최병길 마포문화원장은 “서울에서 사당을 지어 기리는 고려 왕은 공민왕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민왕 사당이 왜 고려 수도인 개성이 아닌 조선 수도인 서울(옛 한양)에 있는 것일까. 설화 하나가 전해진다. 조선 개국 초 마포나루 근처의 곡식창고를 지키던 창고지기의 꿈에 공민왕이 나타나 ‘이곳에 내 사당을 지어 달라’고 했다. 잠에서 깬 창고지기가 땅을 파보니 공민왕 영정이 나왔고 그 자리에 사당을 지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당을 세울 때만 해도 ‘공민왕 사당’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조선 초기라 고려의 왕을 추모하고 섬기는 것은 역모(逆謀)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공민왕 사당은 마포나루를 드나드는 뱃사람들에 의해 선착장의 수호신처럼 섬겨졌다. 서울시 문화재과 오문선 학예연구사는 “공민왕 사당을 부군당(府君堂·마을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공민왕 사당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데는 창전동 주민들 공도 컸다. 일제강점기에는 불에 탄 사당을 돈을 모아 다시 지었다. 공민왕 사당은 종묘(종로구)와 경북 봉화에도 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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