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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초심

중앙일보 2012.04.13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단경이란 말이 있다. 짧은 등잔대란 뜻인데 당(唐)나라 시인 한유(韓愈)의 ‘단등경가’라는 시 때문에 유명해진 말이다. 한유는 “여덟 자 긴 등잔대는 쓸데없이 길지만 / 두 자 짧은 등잔대가 편하고 또 밝구나”라고 노래했다. 두 자짜리 등잔대는 가난하던 시절 독서하던 등잔대이고, 여덟 자짜리 등잔대는 과거 급제 후 새로 산 비싼 등잔대다.

 그래서 단경은 한미했던 시절의 초심을 잃은 벼슬아치를 풍자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유는 이 시에서 “하루아침에 부귀하게 되니 도리어 방자해져서 / 긴 등잔대 높이 걸고 진주와 비취 비춰보네 / … / 담 구석에 버려진 짧은 등잔대를 그대는 보았는가”라고 노래했다. 부귀하게 되면 가난했던 시절의 경험을 담 구석에 버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벼슬길은 그리 순탄한 길이 아니다. 그래서 벼슬길을 환해(宦海)라고 부르기도 한다. 큰 파도가 이는 바다라는 뜻이다.

 청나라 때 육이첨이 쓴 『냉려잡지(冷廬雜識)』에 “환해 파도 깊이는 측량할 수 없구나 / 안온하게 배를 거둔 자 몇 사람인가(宦海波濤深莫測 / 幾人安穩得收帆)”라는 구절이 있다. 벼슬길의 파도는 깊고 깊어서 안온하게 항해를 마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고려 말기 문신 이규보는 “술 취한 고향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만 / 환해는 분노한 파도가 미친 듯이 몰아치누나(醉鄕歸路坦 / 宦海怒濤狂)”라고 노래했다. 낙향 길은 평탄하지만 벼슬길에는 미친 파도가 몰아친다는 뜻이다.

 환해를 피하는 좋은 처신이 탁영탁족(濯纓濯足)이다. 때에 따라 갓끈을 씻기도 하고, 발을 씻기도 한다는 뜻으로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온다. 벼슬에서 추방당해 낙담해 있는 굴원(屈原)에게 한 어부가 “창랑수가 맑구나, 내 갓끈을 씻으리, 창랑수가 흐리구나, 내발을 씻으리(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라고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처신은 쉽지 않다. 허균은 ‘동정부(東征賦)’에서 “저 벼슬길은 근심뿐인데 / 환해의 치솟는 파도 두렵도다”라고 노래했지만 끝내 벼슬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형당했다.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사형당한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의 호가 ‘갓끈을 씻는다’는 뜻의 탁영(濯纓)이다. 김일손은 훈구세력이 판치는 흐린 조정을 맑게 바꾸어 보려다가 사형당했지만 호대로 살다 갔다고 할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고 두 자짜리 단경을 담 구석에 버려서는 후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새 선량(選良)들은 선거 때의 초심대로 흐린 물을 맑게 바꾸는 선량(善良)이 되어야 하리라.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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