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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폭력 넘치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2012.04.13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오욱환
이화여대 교수·교육학과
학교폭력은 순박한 아이들이 문제투성이 학교에 등교하면서 돌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반드시 출현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민주주의는 관용성의 정도로 측정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민주주의가 구현된 사회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에 의해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매긴다. 한국인들은 상대적 우위로만 결정되는 출세에 집착함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우열을 가린다. 학부모들에 의해 학교는 출세가 좌우되는 격전지로 바뀌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단단히 무장시켜 학교로 보낸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사라지고 경쟁 상대들만 늘어나는 이유다.



 옛정을 나누기 위해 모인 동창들도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견주어 거드름을 피우거나 모욕을 느끼는 감정적 암투를 벌인 후 씁쓸하게 헤어진다. 이들은 친구들의 인생에 대한 이해와 격려보다는 학창 시절의 석차, 현재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 배기량과 아파트 평수, 앞으로의 출세 전망 등을 비교하고 평가한 후 대부분 열등감을 안고 귀가한다.



 이들이 비교하는 항목들 가운데 자녀들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자녀들에 대해서는 직접 대놓고 묻지 않지만 암암리에 자료를 수집한다. 자녀가 명문대학에 다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사실을 각각 명품 자동차와 가방보다 더 부각시킨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학력을 갖고도 자신들의 지위에도 이르지 못하게 될 현실을 직면하면서 낭패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의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경제가 선진국을 육박하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모 세대의 한국인들은 ‘개천출용설(개천에서 용 난다)’ 신화를 사실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교육 출세론을 종교처럼 받들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출세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녀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도록 하기 위해 안달하고 있다. 학교폭력은 학교의 단계와 종류에 불문하고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생 간 폭력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짓눌린 채 폭력성을 안고 등교한 아이들이 어떤 계기로 그 폭력성을 분출한 결과일 뿐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되고, 부모들로부터 닦달을 받으며, 교사들로부터 내몰릴 뿐만 아니라 급우들로부터 무시되면, 아이들은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국인들의 기대는 짧은 세월 동안 드라마처럼 경제를 성장시키고 정치를 발전시키면서 한없이 부풀려졌다. 과거엔 기대에 부응하는 현실의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성장과 발전의 단계를 지났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분노하고 있으며, 자신만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은 비정상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자신과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한국인들은 화가 나 있다. 화난 어른들은 자신들의 어릴 때에 비해 한없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데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녀들을 몰아친다. 내몰린 아이들이 그 돌파구를 약한 아이들에게서 찾는데, 그 결과는 학교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폭력은 사회폭력이 학교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학교폭력은 사회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이들이 폭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폭력사회에서는 폭력이 도처에서 효율적으로 가르쳐지며, 학교는 최적의 실험실로 이용될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오욱환 이화여대 교수·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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