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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막말과 빈말

중앙일보 2012.04.13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여러 요인이 있겠다.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 말이다. 그 가운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막말 파문의 영향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유권자가 막말 파문에 반응한 것은 이 문제가 단지 후보 한 명이나 개별 정당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말에 대한 우려의 근원에는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1~2월 전국 모든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 조사에서 피해 사례의 절반(51.2%)이 언어폭력이었다. 숫자로 실감이 안 난다면, 하굣길 학교 앞에 잠깐만 서 있어보면 안다. 아이들은 욕을 달고 산다. 인터넷에선 더하다. 막말은 상처를 남기고, 안으로 곪는다. 그리고 상처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워낙 막하는 게 대세라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는 게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면박 주는 게, 약점을 톡 쏘아 드러내는 게 웃음 코드로 자리 잡았다.



 막말 세태의 정점은 막말로 막말을 단죄하려는 것이다. 총선이 막바지였던 지난 10일 경남경찰청 홈페이지가 마비됐다. 8년 전 밀양 고등학생들이 집단 성폭행을 했던 사건이 발단이다. 당시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을 썼던 여고생이 경찰이 됐다는 소식에 네티즌이 들고 일어났다. 어린 시절 여경은 피해자에게 평생 상처가 될 말을 인터넷에 남겼다. 여경 퇴출을 주장하며 경남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수많은 댓글 중 조목조목 문제를 짚은 글은 공감을 샀다. 그러나 인신 공격성 글도 많았다. 8년의 세월 동안 이 여경이 걸어왔을 개인적 성숙과 변화, 사죄의 뜻을 담은 사과문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막말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감의 부족에서 나온다. 사회 분열을 걱정하는 세력의 표는 그래서 막말 파문에 반응했다.



 선거가 치러진 11일에는 하나마나 한 빈말도 나왔다. 이날 경제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19대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런 울림이 없다. 선거 때마다 하는 얘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선거였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단체의 관성적 성명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새누리당의 승리에 경제단체는 한 시름 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착각이다. 새누리당 공약 어디에도 친기업 공약은 없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 공약만 있을 뿐이다. 기업 때리기가 과하다면 설득력 있는 반박으로,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할 일을 약속할 때다.



 알맹이 없는 빈말은 점잖긴 하지만 문제를 회피하거나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막말과 마찬가지로 빈말 역시 소통의 장애물이다. 빈말이 반복되면 다시 막말이 고개를 들 것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기업 80%가 총선 이후 경제가 더 걱정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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