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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꼼수의 반란

중앙일보 2012.04.13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실장
정두언 의원(새누리당)은 어렵게 당선됐다. 방송사 출구조사에선 민주통합당 김영호 후보에게 5.2%포인트나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저녁 내내 눈 터지는 계가를 벌인 끝에 겨우 625표 차로 이겼다. 정 의원이 당선 사례를 한다면 가장 먼저 김용민 후보(민주통합당)에게 가야 할 것 같다. 그런 후보가 한둘이 아니다. 방송사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 결과가 크게 달랐던 것은 그만큼 박빙 지역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수가 새누리당 후보가 역전한 곳들이다.



 정치 평론가들 중에는 총선에서 지는 것이 12월 19일 18대 대선에서 유리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견제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의미가 다르다. 다음 대통령이 임기를 함께할 국회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되면 임기 내내 발목이 잡히게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이란 무리수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사태까지 맞았던 과정이 말해주는 일이다.



 그런 중요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그야말로 ‘배부른 전투’를 벌였다. 민주당에는 확실한 어음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과 실정(失政), 민간인 사찰 등 3대 호재(好材)가 널려 있었다. 누가 봐도 압도적 과반수를 보장하는 어음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파티부터 벌여 스스로 부도를 내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리더십이 없었다. 한명숙 대표는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광주에서 전직 동장이 자살하며 모바일 경선 문제가 불거졌지만 어물어물 넘어갔다. 그사이 다른 지역으로 논란이 번지고, 곳곳에서 불복하는 빌미를 줬다.



 진보의 힘은 도덕성에 있다. 그런데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 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에 빠져 부인하고, 반격만 했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닥치고’ 찍으라는 건 오만이다. 유권자가 분노하게 돼 있다. 수뢰 혐의로 재판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한 대표로서는 당사자들의 변명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 바람에 새누리당이 안상수·나경원·진성호·신지호·이영조 등 여론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을 줄줄이 잘라낼 때 한 대표는 겨우 임종석 사무총장 한 사람만 주저앉혔다. 그것도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뒤에 말이다.



 리더십이 무너지니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통합진보당에 휘둘렸고, 나꼼수에 끌려다녔다. 이정희 후보를 사퇴시킨 것도 한 대표가 아니라 문재인 상임고문이다. 김용민 막말 파동으로 지역마다 여론 악화를 걱정했지만 한 대표는 “사퇴를 권고했으나 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당 대표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인가. 그러고 나서 어떻게 반MB의 각을 세우나.



 나꼼수의 김어준은 민주당을 협박했다. “니(김용민)가 웃통 벗어젖히고 배에 ‘민주’ ‘진보’ 쓰고…시청과 박빙 지역을 막 뛰어다니면 민주당 야권 다 죽는 거야 ×발…사퇴 어쩌고 하면 ‘한번 죽어볼래?’….” 민주당은 협박에 무릎 꿇고 끌려다녔다. 이해찬 상임고문은 사퇴를 요구한 게 아니라고 물러서는가 하면 문재인 상임고문은 나꼼수를 부산에 불러 함께 지원 유세를 다니기까지 했다. 결국 ‘함께 죽는’ 길로 간 것이다.



 나꼼수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조롱하는 통에 사건은 전국으로 퍼졌다. 그 오만함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예의를 따지는 전통사회, 지방, 고령층에는 치명적이었다.



 몸통을 흔든 꼬리는 나꼼수만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에 휘둘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3대 호재’ 덕분에 반MB가 최선의 전선이라는 것을 여론조사로 확인하고도 자유무역협정(FTA), 해군기지같이 불리한 쟁점으로 옮겼다. 통합진보당에 끌려간 것이다. 전략이라고는 없었다는 뜻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한·미 FTA 반대 서한을 보내놓고 뒤늦게 물러서는 혼선을 빚었다. 수권능력을 의심받게 만든 것이다.



 연대는 세력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중도세력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코가 꿰여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갔다. 지지층을 줄여온 것이다. 공천 기준도 ‘정체성’을 강조하며 온건한 협상파는 몰아냈다. 결국 과거의 민주당보다 통합진보당에 가까운 당을 만들었다.



 연대는 수단이다.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내 편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도 버려야 한다. 모두 새로운 지도체제에나 기대할 일이다. 대세론을 굳히는 박근혜 위원장을 생각하면 대선 준비도 급하다. 문재인 상임고문만으로는 불안하게 됐다. 한때 ‘안철수 서울대 교수 없이도 이길 수 있다’고 콧대를 높였던 민주당이 이제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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