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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주민배심원제 … “생계형인데 봐줍시다” “인도 주차 단속 더 세게”

중앙일보 2012.04.12 10:14 1면 지면보기
#1 “이 건은 택배 차량이 총 2회 주차 위반을 한 사항입니다. 배달 때문이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첨부된 배송장 날짜가 단속일자와 다릅니다.” “생계형 차량이고 회사가 아니라 기사가 과태료를 부담해야 하니 고려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인데 본인이 조심해야죠.” “다음부턴 올바른 배송장을 보내라는 안내문을 발송하는 건 어떨까요.”



#2 “이 지역은 남부터미널 근처입니다. 공용·사설 주차장을 찾기 힘든 곳이죠. 부모님을 터미널까지 배웅하려고 주차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일 겪어봤어요. 거기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잖아요. 터미널 앞에서 지인을 내려주고 바로 갈 수밖에 없었죠.”



지난 4일 서초구청에서 열린 ‘불법 주·정차 단속 의견진술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민간위원들. 왼쪽부터 이지아·김기철·배문주·이기호씨.


 지난 4일 오후 3시 서초구청 5층 소회의실. ‘불법 주·정차 단속 의견진술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서초구 이덕행 주차관리팀장은 위반자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한 자리에 모인 심의위원들은 의견을 나눴다. 이 회의에서는 위반자의 과태료 면제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은 7명이다. 이 팀장을 포함해 공무원 3명과 주민 4명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11월부터 공무원만 참석하던 심의위원회에 주민을 포함시켰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 사항이었다. 지난해 진익철(61) 서초구청장의 지시사항이기도 했다. 시행 전 3개월 동안 준비기간을 거쳤다. 심의위원회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각 동 주민센터 추천을 받아 민간위원 35명을 위촉했다. 대부분 주부·자영업자다.



회의는 매주 1회 1시간~1시간30분간 열린다. 회의마다 200~250건을 처리한다. 의결 방법은 다수결이다. 주민이 공무원보다 1명 많은 이유는 이 원칙 내에서 주민 의견을 더 반영하기 위해서다.





 주·정차 위반자는 사전통지서 발급일로부터 20일 안에 ‘의견 진술’을 제출 할 수 있다. 서초구는 한 해 1만2000여 건을 접수한다. 전체 단속 건수의 5%수준이다. 이에 대한 면제비율은 80%대다. 위원회에서 ‘주민배심원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70%대였다.



 배문주(41·방배2동) 위원은 “공무원 입장이 아닌 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니 위반자의 의견을 더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기호(64·반포본동) 위원은 “화장실이나 약국에 가야 하는 등 긴급한 상황 때 주·정차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이에 대한 과태료 부과 여부를 민·관이 함께 협의한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종전보다 단속이 강화된 불법 주·정차 지역이 있다. 인도와 도로 모퉁이 등이다. 인도에 주차할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걸림돌이 된다. 모퉁이에 주차하면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민간위원은 지역 주차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주민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위반자들이 단속에 불만을 터트리다가도 주민과 함께 심의했다고 말하면 수긍한다. 제도 시행 후 이런 민원이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진 서초구청장은 “주민자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공무원과 주민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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