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보균 칼럼] 폭로 본능의 역설

중앙일보 2012.04.06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선거는 의외성이다. 선거는 돌발 변수로 요동친다. 정치의 예측 불가능한 속성이다. 그것은 유권자를 끄는 매력이다. 한국 선거는 동네 축구다. 공격이 득점을 보장하지 않는다. 골은 어이없는 수비 실수로 얻는다. 선거 흐름의 반전(反轉)은 상대방 실책 덕분이다. 선거의 희극적 속성이다.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이 폭로됐다. 그가 출연한 인터넷 성인방송 대담은 저질 퍼레이드다. “쓰레기 매립장에 XXX에 쓴 휴지는 반입금지시켜”부터 조잡한 음담패설, 여성 비하는 끝이 없다.



 ‘시청역 앞에서 지랄하는 노친네들을 다스리는 법’을 놓고 그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없애자”고 제안했다. 노인 모욕 발언은 선거판을 긴장시킨다. 2004년 총선 때 여당 대표 정동영의 노인 폄하 발언 기억 때문이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기습적인 역풍을 불러왔다. 한나라당(지금 새누리당)은 빈사상태에 빠졌다. 정동영 발언은 상대방을 기사회생시켜 주었다. 한국의 6070세대는 녹록지 않다. 우리 정치사의 파란과 굴곡만큼 선거에 단련됐다. 한국의 성장은 그들의 자존심이다. 김용민의 어휘는 그런 세대를 치졸하게 조롱한다.



 김용민의 나꼼수는 기성 정치를 거침없이 비꼬았다. 나꼼수 무대는 불만의 대리 배설 공간이다. 그리고 그는 기성 정치권에 진입했다. 나꼼수 동료인 정봉주의 선거구를 승계했다. 정치는 권한을 주는 만큼 품격의 책임을 요구한다. 그의 발언 시점은 7~8년 전 과거다. 하지만 정치는 검증 관문이 있다. 그가 막장 언어 습관을 자성, 포기했다는 얘기는 없다.



그도 나꼼수 스타다. 그 때문에 폭로는 극적 효과를 낳는다. 폭로는 선거의 본능이다. 폭로는 나꼼수의 마케팅 본능이기도 하다. 인기몰이 수단이다. 지금 장면은 역습과 역설의 덫에 걸려 있다.



 김용민 파문은 간결하고 자극적이다. 표심(票心)은 민감한 정보에 반응한다. 선거 정보의 거친 단순성은 쟁점 집약의 조건이다. 김용민을 후원하는 멘토들도 파문에 얽혀 있다. 서울대 교수 조국(“우리 시대의 후보”), 소설가 공지영(“사위를 삼아도 될 만큼 믿을 만한…”)의 동시 출연은 이슈 파괴력을 높여준다.



 선거는 상호배타적이다. 김용민에 대한 지원은 계속된다.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가 나섰다. 이정희는 “문제를 바로 보고 스스로를 바꾼다면, ···김용민을 신뢰합니다”고 했다. 자기 변신과 개선을 하면 상관없다는 인식이다. 그런 식이라면 여야 모두 비난받을 만한 후보는 없다.



 이정희식 접근은 어설픈 진영(陣營)논리다. 우호 세력을 무턱대고 감싸려 한다. 서울대 교수 안철수는 “진영논리에 빠진 분들이 아니라 국익을 생각하는 분들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말은 인격이다. 인격이 성숙한 분들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대학 특강에서 내놓은 젊은 세대의 총선 가이드라인이다.



안철수의 진영 배제론은 이정희식 진영논리와 충돌한다. 언어관리에선 나꼼수와 다르다. 이들의 접근법이 선거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흥미롭다. 안철수와 나꼼수의 젊은 세대 인기는 특별나다. 선거는 그들의 영향력 순위를 판정해 줄 것이다.



 김용민의 출마구는 서울 노원갑이다. 강북은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수도권 접전 지역에 김용민 파문은 미묘한 악재다. 민주당은 고심 중이다. 민주당은 나꼼수 지지층의 동정심을 기대한다. 거친 공세는 반대쪽 지지층의 위기감을 촉발한다. 지지세력 결속의 계기가 된다. 그 때문에 선거 고수들은 공세 수위 조절을 힘들어한다.



 민주당은 민간인 불법 사찰 공세에 힘을 쏟아왔다. 첫 폭로는 미숙했다. 문서의 날짜를 노출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역공을 허용했다. 이명박 정권의 사찰(査察)이든, 노무현 정권의 감찰(監察)이든 폭로 정보가 혼재 상태다. 폭로 이슈가 단순함을 잃으면 파괴력이 떨어진다. 민주당은 김제동의 연예인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젊은 세대의 관심은 커졌다. 하지만 김용민 파문은 연예인 사찰 쟁점마저 헝클어 놓고 있다.



 선거 정보가 쏟아진다. 과거엔 정보가 부족했다. 세상사를 판정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난다. 세상사 판별은 더 힘들어졌다. 유권자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 선거는 유권자 개인의 궐기를 요구한다. 국회의원은 세상을 재단한다.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가다듬는 자리다. 유권자에게 선택의 안목과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출발은 나만의 독립적인 궐기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