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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불륜'에 남편 뺏긴 대치동 학원장도…

중앙일보 2012.04.06 00:22 종합 26면 지면보기
JTBC 수목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입시학원 원장 지선 역을 맡은 이태란.
‘아내의 자격(JTBC)’은 중년 여성 서래(김희애)의 불륜을 통해 대한민국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드라마다. 서래에게 ‘아내의 자격’을 묻는 그녀의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소름 끼치게 묘사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착한 불륜은 없다’면서도 서래를 응원한다. 그러나 어쩐지 상대역 태오(이성재)에게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의 아내, 지선(이태란) 때문이다.


[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JTBC ‘아내의 자격’ 이태란

 지선은 대치동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국제중 입시학원 원장이다. ‘세상의 더러움’(계급·학벌사회)을 피하는 대신 뛰어들어 “조용히 이기는” 편을 택했다. 그러나 밉지 않다. 대치동에 적응 못 하는 서래를 품고 격려해주는 따뜻함을 가져서다. 무엇보다 그녀는 솔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척하지만 속내는 추잡한 서래네 시댁과는 달리 “내가 속물이 다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을 줄 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자신감 넘치고 당찬 그녀가 남편의 바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그러지마. 내가 변한 거 다 알아. 특히 이 동네 이사 오고 내 주장 심해서 당신 힘들게 한 거 다 알아”라며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떠나버린 태오에게 하는 복수라고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린 가족사진을 지우는 것뿐. 지선은 저주를 퍼붓는 대신 담담히 말한다.



 “우리 진작부터 서먹했잖아.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뜨고부터.”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 ‘여자가 너무 기가 세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맞다. “내가 사나워졌다”며 자책하는 지선도 그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그건 그녀가 가부장제 속에선 어쩔 수 없는 약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적어도 그 점에서는,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 배신당하는 드라마 속 ‘뽀글머리 아줌마’들과 다를 게 없다. 태오가 미안하다는 말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떠나도 못되게 굴지 못했던 지선은, 되려 자신에게 독해짐으로써 상처를 덮는다.



 서래의 시댁에는 파국이 예상되고, 서래는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끝에서는 누구보다도 지선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의 가치관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겉으로 강해 보이는 지선도, 서래만큼이나 약자임을 알아서다. 하나 더. 태오가 그의 ‘순수’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누구보다 현실적인 지선 덕분이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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