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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박빙의 패배’를 노리는 참 이상한 선거

중앙일보 2012.04.03 00:07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바둑으로 치면 프로와 아마의 대국이었다. 다 죽은 고목(枯木) 한나라당에 뜻밖의 이름을 달아 새싹을 틔워낸 것이 프로의 솜씨였다면, 기세등등했던 진보연합군이 승리고지 7부 능선쯤에서 주춤거린 것은 아마추어의 한계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운동권 대모 한명숙 대표는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청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위군중과 한 번도 섞여본 적 없는 박근혜 대표에겐 손이라도 잡고 싶은 행인들이 몰린다. 두 달에 걸친 지루한 공천 과정에서 그저 그런 인물들로 대진표를 채운 것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새누리당은 봄비에 물오르듯 생기를 회복하는 데 반해 서슬 시퍼렇던 민주통합당은 괜한 잔병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총선 1라운드는 박근혜 대표의 선전이었다. 여당의 회복기류로 열흘 남짓한 총선 2라운드는 예측할 수 없는 접전으로 돌입했다. 선거전문가들이 점치듯 새누리당 120~130석, 민주통합당 130~140석이 예상된다면 4·11 총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박빙의 선거다. 보수가 서너 개 진영으로 분산되고 진보가 뭉친 마당에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내부 잡음에 시달린 진보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프로의 전략이 먹힌 탓이다. 통합 성사를 위해 좌측으로 멀찌감치 옮겨 앉은 진보를 잽싸게 따라가 차별성을 희석시킨 소위 ‘덮치기 전술’이 주효했던 것이다. 물론 우측 모서리를 군소정당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말이다.



 ‘덮치기 전술’이 유효했던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사람 불러온’ 덕이었다. 좌편향하는 민심을 잡으려면 ‘비상대책위원회’에 사람을 불러와야 했고, 그것도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올인한 진보의 예봉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박근혜 대표가 이 방면의 전문가인 김종인 전 장관을 불러온 것은 적확하게 들어맞았다. 보수 정체성을 배신했다는 정통보수파의 맹렬한 파상공세로부터 비대위를 지켜내고 재창당의 터널을 통과한 것은 박근혜 대표의 본능적 정치감각 덕분이었다. 만신창이 정당을 살린 총상 전문의 박근혜는 그 공적을 앞세워 친이(親李)세력을 전격적으로 솎아냈다. 청와대는 아예 숨을 죽였다. 총선 1라운드의 정지작업만으로 박근혜 대표는 이미 대선후보 자리에 등극한 셈이다.



 한명숙 대표도 사람을 불러오긴 했다. 공천위의 역점은 박근혜의 덮치기 전술에 ‘엎어치기’로 맞설 선수를 고르는 일이었는데 그게 삐걱거렸다. 지명도가 높은 보수후보는 친노(親盧)세력으로 맞받아치고, 2040 젊은층은 진보연대로 견인한다는 게 공천위의 ‘사람 부르기’ 전략이었다. 우선 탈락 통지서를 받아 든 DJ계 노장파들이 극렬히 반발했고 급기야 결별을 감행했다. 호응이 좋았던 모바일 경선에 이상이 생겼다. 통합의 주역 이정희가 물러나고 ‘경기동부’ 출신 선수가 하루 만에 등장했다. 그게 보수언론의 레이더에 걸렸다. ‘경기동부’는 이미 1990년대 중반 소멸된 주사파 분파인데, 이후 개체화된 이 성향이 ‘집합적 실체’로 호명되자 진보연대의 ‘사람 부르기’ 전략에 불온한 혐의가 씌워졌다. 총선의 단골손님인 평양발 북풍(北風)이 이번에는 남쪽에서 발원한 것이다.



 정책 차별성과 비전으로 각축할 총선 2라운드가 비리폭로와 약점 들추기로 치닫는 이유가 이것이다. 총선은 유권자의 현실비판을 결집하고 미래희망을 갱신하는 정치적 환풍구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주요 실세들은 강판됐고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작년 말만 해도 ‘가짜, 파탄, 심판’ 구호에 마음이 설렜던 표심은 ‘미래, 약속, 통합’에도 솔깃한 표정이다. 30%로 급증한 부동층 민심을 결국 인물론이 파고든다. 실수하거나 이상 경력이 들키면 끝장이다.



 남은 열흘은 ‘약속 뒤집기’ 대 ‘불법사찰’ 간 한판 승부로 보이는데, 불법사찰 응징바람이 거세다. 새누리당은 맞바람을 놓을 신공격 개념을 찾아 절치부심이다. 이대로라면, 대체로 10~15석 내외의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성립될 개연성이 크다. 무소속의 약진도 가세한 박빙의 선거다. 그런데 속내는 다르다. 양 진영 모두 완승보다는 ‘박빙의 패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4·11 총선이 예비대선이고, 어차피 공방전이라면 ‘아쉬운 패배’가 유권자들의 동정심과 견제심리를 십분 자극할 거라는 한국적 표심 때문이다. 양당 모두 포복자세로 바꿨고 엄살모드로 들어갔다. 박근혜 대표는 총선에서 패배하면 물러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야인 상태에서 다시 호명되는 영광을 안을 것이다. 한명숙 대표는 패배하면 대선후보군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진보진영 대선주자들은 한 대표를 딛고 정권교체 호소력을 높일 것이다. 박빙의 패배라면 한 대표도 낄 수 있다. 그러므로 대선을 생각하면 양당 모두에게 ‘박빙의 패배’가 최선이다. ‘아쉬운 패배’를 노리는 4·11총선, 박 대표의 어투를 빌리면 ‘참 이상한 선거’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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