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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는 내 무명 시절 고객

중앙선데이 2012.04.02 16:06 264호 11면 지면보기
케네스 코본푸에(Kenneth Cobonpue·44)는 필리핀 공예의 전통에 혁신적 디자인을 더해 해외시장에서 필리핀 수공예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대표적인 휴양지 세부섬에서 등나무·대나무·코코넛·마닐라삼 등의 자연소재를 가공해 모던한 스타일의 가구를 만든다. ‘오션스13’ 등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 ‘CSI’ 등에서 그가 만든 제품을 볼 수 있다.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로버트 드니로 등 많은 할리우드 스타가 그의 팬이다. 뉴욕 프랫 인스트튜트를 졸업하고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일하다가 어머니가 1972년 설립한 가구회사 경영을 위해 귀국했다. 어머니 베티 역시 등나무가구 제작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다. 그의 제품은 현재 15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에

-당신의 디자인 컨셉트는 어떤 것인가.
“나는 수작업으로 모던한 형태의 천연소재 가구와 소품을 만든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는 것은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 이 나라에는 너무도 많은 자연소재가 있어서 이용하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고 내 작업이 결코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당신의 작품을 일일이 만드는 것은 장인들인데, 한국에서도 디자이너와 장인의 협업이 화두다. 장인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은 없나.
“없다. 장인들은 디자이너를 존중한다. 장인들은 기술이 좋고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인도네시아나 다른 이웃 나라에서도 일해봤는데 그들 또한 그렇다. 우리는 상호 간에 개방된 문화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세계의 디자인 트렌드가 자연주의와 개인주의다. 필리핀 디자인만의 아이덴티티는 뭔가.
“소재와 장인정신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천연재료가 풍부하고, 우리 장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 특히 직조기술만큼은 아시아 최고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젊은 디자이너 그룹 ‘무브먼트8’의 일원이었다. ‘무브먼트8’의 활동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무브먼트8’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필리핀 정부의 디자인 마케팅 프로젝트다. 필리핀의 산업을 디자인을 통해 육성하고자 한 시도다. 젊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그룹을 만들어 해외 여러 나라의 디자인 행사에 쇼룸을 열고 우리를 어필시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도움을 줬다. 파리, 밀라노,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필리핀 디자이너들의 개성과 모던 디자인 철학을 적극 선보인 것은 매우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었고, 우리 모두는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나도 배운 점이 많다.”

-지금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히지만 한때 미국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무엇이 당신의 과거와 현재에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귀국한 뒤 내 공장을 가지고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에 있을 때는 내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러 다니기에 바빴고,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거기에 소모해야 했다. 내 공장에서는 내 자신의 디자인을 아무 낭비 없이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유럽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각 지역의 디자인 트렌드를 꿰뚫고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오래되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좋아한다. 그들은 역사도 짧고 집 밖에 나가면 별로 문화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전통과 문화를 집에 들여놓으려 한다. 반면에 유럽은 밖에 나가면 순 전통이고 문화고 고전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자기만의 공간에서는 모던한 것을 선호한다. 아시아는 그와는 또 다르다. 나는 미국에서 전통적인 디자인을, 유럽에서 모던한 디자인을 배웠고 그 모든 것을 흡수한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당신의 팬이라던데.
“브래드 피트가 내 물건을 샀을 때 난 유명하지 않았다. LA에 있던 쇼룸에서 우연히 무명 디자이너였던 내 물건을 발견하고 단지 디자인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구입했다. 그래서 더 기쁘게 생각한다. 그는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매우 높아서 그의 집에 가면 모든 물건이 디자인에 관한 스토리를 담고 있고, 내 작품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파리의 라이프 스타일 박람회 ‘메종 앤 오브제’에서 태양광발전으로 움직이는 유선형 대나무 컨셉트카 디자인 ‘PHEONIX’로 주목을 받았다. 당신은 가구 디자이너인데, 실현 가능한 디자인인가.
“현재 미국과 독일의 몇몇 회사와 작업 중이다. 겉은 가구처럼 천연소재로 직조한 것이지만 속은 실용적인 전기차로 만들고 있다. 필리핀에는 자동차산업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꼭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10명의 외국 디자이너에게 열 가지 필리핀 천연소재로 디자인 상품을 만들게 한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아주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로컬 입장에서 보면 주변의 소재로 계속 과거 패턴을 반복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지만 바깥의 시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전혀 새로운 가능성이 발현되는 것 같다. 외국의 디자이너 작품이니 더 많은 노출 기회를 갖게 되고 자연히 글로벌 마켓으로 이어지니 수익 창출 면에서도 효과적이다. 마케팅 면에서 준비되지 않은 회사들도 많이 이익을 봤다. 하지만 외국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계속 더 높은 시장을 지향하는 방향성은 분명해야 할 것 같다. 여기도 인건비가 점점 높아지는데 싸구려 시장용으로는 승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두 번 참가했다. 한국 디자인을 잘 알고 한국 친구도 많다. 그런데 한국 디자인에는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예컨대 필리핀에는 자동차산업 자체가 없지만 한국에는 자동차산업이 굉장하다. 그런데도 서양의 디자인을 따를 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디자이너는 없지 않나. 눈부신 산업이 있으니 이제 보다 더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디자인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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