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평양이 단추를 누르기 전에

중앙일보 2012.04.02 00:47 종합 31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광명성 3호의 충격파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아직 발사도 하지 않은 로켓 문제가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를 ‘납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정도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발사 중지를 외치고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태양절 100주년에 김정은의 ‘위업 계승’을 알리는 최대 이벤트를 외부 압력 때문에 중단할 평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3월 29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배명복 칼럼은 정곡을 찌른다. “쏠 테면 쏴라.” “철저한 고립과 혹독한 제재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 북한 스스로 굴복할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가슴에 와 닿는 주장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것이 과연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실제로 발사가 이루어지면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을 통해 응징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에 맞서 북은 우선 2월 29일 북·미 합의의 무효화 선언을 통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방문을 거부하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공산이 크다. 동시에 3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도 있고, 2·13 합의에 의해 동결했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재가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2009년 4월 이후의 행보가 반복되는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적 행동에 대해 우리에게는 두 가지 대응법이 있다. 하나는 주변국은 물론 유엔과도 공조해 대북 경제제재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 전력 보강 등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역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가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제재의 유용성부터 의심스럽다. 중국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지도 불투명하지만 설령 동참한다 해도 고통에 익숙한 평양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와중에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전력이 하루가 다르게 강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신냉전 구도도 한층 굳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죄와 벌의 악순환’ 속에서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략적 인내’의 근본적인 한계다.



 다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보자. 탄도미사일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는 핵탄두 탑재를 봉쇄하는 것이다.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통제하고 핵탄두의 추가 생산과 시험을 막을 수 있는 2·29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로켓 발사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2·29 합의를 무효화하는 것은 파우스트의 우를 범하는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미래의 위협’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들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플루토늄이라는 ‘현재의 위협’을 판도라의 상자에서 풀어주었던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서막의 과오와도 흡사하다. 



 내친김에 그간의 응징외교가 어떤 실적을 거뒀는지도 되짚어보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2009년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포격. 그때마다 정부는 강도 높은 대북 응징의 공조 외교를 전개해 왔지만 어느 하나 가시적 실효를 얻지 못했다. 북한 문제를 응징과 메가폰 외교만으로는 풀 수는 없다는 교훈을 인정한다면, 마냥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평양이 발사 단추를 누르기 전에’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 나서서 평양에 고위급 특사를 보내고 6자회담과 별개로 미사일협상을 벌이는 방법이다. 이 같은 협상이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에 참여했던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과 로버트 아인혼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0년 10월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거리 500㎞ 이상 미사일의 추가개발 및 생산의 중지, 보유한 미사일의 폐기, 단거리 미사일 기술과 부품의 대외판매 전면 중단을 제시하고, 반대급부로 매년 3개의 북한 인공위성 대리 발사와 수년에 걸친 현물 보상을 요청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 협상은 무산되었지만 이때의 경험을 되살린다면 미사일 문제에서도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거듭 강조하거니와 징벌외교가 능사는 아니다. 겉으로는 응징의 의지를 펼쳐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대화와 협상으로 예방외교의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파국을 막는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