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교생 딸 자퇴 시킨 사장, 외딴섬 들어가…

중앙일보 2012.04.02 00:32 경제 2면 지면보기
실패를 경험한 중소기업인 20명이 재기를 다짐했다. 지난달 31일 경남 통영 앞바다 섬에서 열린 ‘제2기 중기 패자부활 캠프 수료식’에서다. 이들은 4주간 교육을 받고 다시 기업을 일구기 위해 나선다. 사진은 수료식 참석자들이 재기의 각오를 외치는 모습. [사진 중소기업청]


지난달 31일 오전 7시30분 경남 통영에서 배로 한 시간 떨어진 섬 죽도. 밝은 연두색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 20명이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바닷바람과 짙은 안개를 헤치며 야산에 올랐다. 30분쯤 걸려 꼭대기에 이른 이들은 ‘야호’ 소리를 지른 뒤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다시는 이런 데서 보지 맙시데이.” “아무렴, 다시는 안 올끼다.”

외딴섬서 하루 두끼, 3주 노숙 …“다신 이런 데서 보지 말자” 다짐
나는 다시 일어서고 싶다 <하> ‘중기 패자부활 2기 캠프’ 가보니



이들은 민간 기구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주최한 ‘중기 패자부활 2기 캠프’ 참석자들. 4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를 하는 날 아침, 산에 올라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재기중기개발원은 실패를 경험한 기업인들이 ‘마음을 치유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며 부산의 기업가인 전원태(64) 엠에스코프(MS CORP) 회장이 지난해 세웠다. 죽도의 폐교를 리모델링해 연수원을 만들었다. 명상 및 각종 심리 치료와 더불어 재기를 위한 각종 경영 노하우 등을 가르친다. 교육비는 없다. 지난해 말 1기 12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허밀청원(虛密淸圓)’, 즉 ‘묵은 마음을 비워 맑고 둥근 마음만 가득 채워가는 곳’ 이라는 말이 연수원의 설립 이념이다.



 2기 캠프 참석자들은 그야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생활을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하루 3시간씩 명상을 하고, 4주 내내 절제하는 의미로 식사는 하루 두 끼만 했다. 둘째 주부터는 산속에 친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자며 재기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캠프 참가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다. 김정엽(53)씨는 운영하던 금속업체가 2009년 부도났다. 위험한 ‘원자재 선물’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빚을 갚으려 공장은 물론 집까지 처분했다. 한때 가정에 문제가 생겨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수료식 전날인 30일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 실패가 다 남 탓, 환경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업을 하면서 한동안 처음에 가졌던 열정과 의지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게 내 마음 먹기 나름’이란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



 일기장에는 새로 할 사업 아이템도 적혀 있었다. ‘LED 소재 사업을 해보겠다. 내년 하반기까지 제품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망한 LED 시장에 도전해보겠다.’



 다른 캠프 참여자들 역시 “4주 동안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환경업체를 운영하다 꼭 1년 전 부도를 냈다는 이대엽(54)씨는 “가족과 직원들에 대한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고혈압에 시달렸는데 이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나니 약이 저절로 끊어지더라”고 말했다.



 수료식 전날엔 지난해 말 이곳을 거쳐간 1기 선배들이 일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 환경 쪽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다 2005년 부도를 낸 최봉석(54)씨가 그런 참여자 중 하나였다.



그는 “채권자들이 학교로 찾아가 괴롭힐까봐 고교생 딸을 자퇴시키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재기 교육 23일째 되던 날, 마음에 즐거움과 자신감이 깃들기 시작했다”는 그는 1기 교육생 동기와 함께 플라스틱 생활용품업체를 차렸다. 현재 직원은 약 10명. “생산에 매달리느라 3주째 집에 못 들어간 채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펴놓고 잔다”는 그는 “그래도 나 자신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느낌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31일 수료식을 마친 뒤 캠프 참여자 20명은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다. 수료식에 참석한 송종호(56) 중기청장은 “여러분의 실패 경험은 다른 기업인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사회적 자산”이라며 “이제 고난의 터널에서 나왔으니 앞으로 나가자”라고 말했다.



통영=김영민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