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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압도적 승리 … ‘미얀마의 봄’ 길이 열렸다

중앙일보 2012.04.02 00:31 종합 6면 지면보기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이 예상되자 양곤 NLD 청사 앞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를 상징하는 공작과 흰색 별이 새겨진 NLD의 빨간 깃발, 수치 여사 사진을 흔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양곤 로이터=뉴시스]


평생을 미얀마 재야 민주화운동가로 살아온 아웅산 수치(67) 여사가 마침내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원의원 보궐선거 당선



 수치 여사는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하원 후보로 출마, 당선됐다. 옛 수도 양곤의 빈민층 지역인 카우무가 그의 지역구다. NLD는 이날 밤 “잠정 집계 결과 수치 여사는 82%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며 그의 당선을 선언했다. 오후 8시(현지시간) 현재 129개 투표소 가운데 112개소에서 승리가 확정됐다.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어 선거 전부터 수치의 당선은 기정사실화됐다. 상원 6석, 하원 37석, 지방의회 2석을 놓고 치러지는 이번 선거 결과는 2~3일 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NLD는 개표 3시간 만에 “NLD가 후보를 낸 44개 지역 모두 당선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수치는 선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지역구 내 빈민촌에 머물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지지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1일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각 투표소를 돌았다. NLD의 당색인 붉은색 머리띠와 스카프를 두른 유권자들은 “어머니가 돌아왔다”며 환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투표를 마친 네인 마운(67)은 “NLD의 정책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려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수치를 믿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역사적이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끈 NLD가 압승을 했지만 선거는 무효 처리됐고, 수치는 가택연금됐다. 그런 그가 입후보한 것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전진이자 전환점이다. 수치 스스로도 선거 기간 중 “(이번 선거는) 하나의 전환점” “민주주의를 위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미얀마 권위주의 체제의 부분적 청산이라는 시각이다. 수치 여사는 선거 부정으로 얼룩진 2010년 총선을 보이콧했었다. 수치 여사가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로서 정치 여정을 시작한다는 그 자체가 갖는 의미가 가장 크다는 얘기다.



1947년 두 살이던 아웅산 수치(가운데)가 미얀마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아웅산 장군(오른쪽)과 어머니 킨 치(왼쪽), 오빠들과 함께한 가족사진. 아웅산 장군은 이해 7월에 암살됐다. [BBC 웹사이트]
 지난해 3월 취임한 테인 세인 대통령은 가택연금 중이던 수치와 만났고, NLD의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정치범 석방과 언론 통제 완화 등을 단행했다. 서방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미얀마가 스스로 민주화의 문을 연 것이다. 생존을 위한 개방이었다. 내친김에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자의 파업권까지 보장했다. 그러자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 등 국제사회의 전략적 구애가 쏟아졌다. 이번 선거는 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50년 만에 치러지는 민주선거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NLD가 후보를 낸 전 지역구에서 승리한다 해도 의석 수는 전체의 7%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얀마 의회는 총 664석(상원 224석, 하원 440석)이다. 이 중 4분의 1은 군 총사령관이 군부 측 인사를 앉히도록 돼 있다.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2010년 총선에서 80%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군부와 친군부 성향의 정당이 의회를 독점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의 아이콘이다.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부친 아웅산 장군은 그가 두 살 때 암살됐다. 이후 인도 주재 미얀마 대사를 지낸 어머니를 따라 청소년기를 인도에서 보낸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다 만난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아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88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그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는 군정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그 길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지난 20여 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쟁취를 위해 투쟁한 아버지에 버금가는 고난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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