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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현실의 강철중 검사는 꿈인가

중앙일보 2012.04.02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성표
탐사팀 기자
사학비리를 다룬 영화 ‘공공의 적 2’. 배우 설경구가 정의로운 검사 강철중 역을 맡았다. 그는 외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파헤친다.



 “설경구 같은 검사가 돼주세요.” 서울 강북의 한 사립학교 재단의 전·현직 교직원들이 재단비리를 수사하던 검사에게 당부한 말이다. 수사 대상은 학교재단 사무국장이자 상임이사직을 겸하고 있는 A교장. 지난 2월 초 검찰은 A교장 집을 압수수색하던 중 금고에서 현금 17억원을 발견했다. 5만원권 지폐 3만4000장에 무게만 해도 30kg이 넘는다. 사진 촬영 차 알아보니 웬만한 은행 지점에서도 이 정도 액수의 5만원권은 갖고 있지 않았다. A교장은 “37년간 임대수입을 모은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자금 중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밝혀내지 못한 채 다른 혐의만 적용해 A교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재판을 앞둔 A교장은 “검찰에서 충분히 소명해 문제 없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A교장의 변론을 위해 전관과 유명 로펌 변호사 10여 명이 동원됐다. 전직 검찰총장까지 ‘전화변론’에 나섰다.



 10년 동안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다고 고백한 재단 전 관리부장, 자신 명의가 도용돼 비자금 계좌로 사용됐다는 전직 교장 등 구체적인 증언과 이를 입증해 주는 자료는 많다(본지 3월 31일자 1면, 16~18면). 실제 검찰은 계좌추적 과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1개월을 끌어온 수사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검찰에 열 차례나 출두한 한 전직 교직원은 “검찰에서 내가 진술한 내용은 다 어디로 사라졌냐”며 어이없어 한다. 수사에 협조한 이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다. 검찰은 추가 수사와 관련해 “현재로서는 아무 얘기도 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부실·축소수사’라는 말이 검찰 주변에서 서슴없이 나온다. 검찰은 “재판에서 내놓을 히든 카드가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한다.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공소장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A교장이 횡령을 하긴 했지만 개인 이득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의 민간인 사찰 수사가 부실 수사였다는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힘센 쪽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우리 검찰이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경찰에 수사를 맡기는 게 더 낫겠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현실에서도 강철중 검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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