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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아플 수도 없는 마흔, 기업도 똑같다

중앙일보 2012.04.02 00:07 경제 12면 지면보기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조용필과 이선희, 레슬링 황제 김일, 통금과 88올림픽은 추억으로 물러났다. 그 자리엔 스마트폰과 인터넷, 아이패드와 카카오톡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관심 밖이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머릿속은 온통 자식 교육, 불안한 미래, 그리고 돈이다. 또 수시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최근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청춘은 마음 놓고 아플 특권이 있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지만 마흔은 책임감에 아파도 아프다고 하소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마흔 살이 겪는 애환과 슬픔, 회한을 토닥토닥 위로해 줌으로써 많은 독자에게서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 가운데 마흔에 든 기업이 많다. 1969년에 태어난 ‘삼성전자’, 1967년생 현대차, 68년생 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마흔을 훌쩍 넘겼다. 한국의 스타기업인인 이병철·정주영·박태준 회장이 창립해 고난과 역경의 40여 년 기업사를 써내려 온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내다 팔수록 적자’인 시기를 겪었다. 90년대 외환위기 시절에는 자금줄이 끊기면서 줄도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여 만에 미국발·유럽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쳐 수출길이 막히기도 했다.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1년에 2193시간을 일하는 나라’ ‘일본 제품 베껴내는 한국 기업’이라는 비아냥에 모멸감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의 과감한 결단과 도전의식, 근로자들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협력업체의 동반의지 등이 한데 뭉쳐 역경을 이겨냈다. 국민과 정부는 이런 기업에 대해 ‘산업역군, 수출역군’이라며 한껏 치켜세워 주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사회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인다. ‘기업이 역경을 딛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대기업들, 이대로는 안 된다”를 외치는 상황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재벌세 도입,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규제강화 등을 통해 경제력 집중을 막아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사회 통합의 해법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경제력이 한 곳으로 쏠리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경제력이 집중되면 정경유착의 개연성이 커지고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수 있으며, 구성원 간의 불신이 강해져 공동체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과거에 비해 우리 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는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자산규모와 매출액만 놓고 볼 때 대기업 비중이 늘어난 일부 업종이 있지만, 반대로 감소한 곳 역시 많다. 기업 매출총액에서 주력 업종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 즉 업종특화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문어발식 팽창’이란 주장도 맞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돼 계열사 수가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수 확대와 출총제 폐지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경제력 집중에 대한 통계적 사실과 일반적인 상식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비판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반기업 정서를 확대시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



  물론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극단으로 쏠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자들까지도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이 ‘균형을 상실한 시장경제 체제’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시대정신과 이를 반영하겠다고 앞뒤 재지 않고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걱정이 든다.



  기업활동을 규제해서 얻는 실익과 반대로 생길 수 있는 폐해를 따져보고, 비현실적인 최선의 정책과 현실 적용이 가능한 차선은 무엇인지, 현재와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깊이 살펴보는 균형이 절실히 요구된다.



  앞으로도 우리 기업들은 흔들림 없이 생산과 투자, 일자리 창출이라는 본업에 충실할 것이다. 그리고 동반성장·투명경영·사회공헌활동과 같이 우리 사회가 기업에 부여한 책임을 다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마흔을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즉 ‘불혹(不惑)’이라 했다. 40여 년의 숱한 위기 속에서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들에 채찍보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때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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