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 전통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중앙선데이 2012.03.31 23:56 264호 9면 지면보기
필리핀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에가 디자인한 대나무 소재 컨셉트카 ‘PHEONIX’
덩굴풀, 마닐라삼, 뱀가죽  독특한 소재와 기술의 결합
3월 14일 아침 필리핀 마닐라 외곽 파사이시티의 SMX컨벤션센터. CITEM(Center for International Trade Expositions and Missions) 주최로 1983년 이후 해마다 2회씩 개최되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디자인 행사 ‘마닐라 페임’의 개막식이 열렸다. ‘마닐라 페임’은 올해로 55회째를 맞이하지만 지난해 ‘디자인위크 필리핀’을 지정한 이후 처음 맞는 대대적인 행사라 의미가 깊다. ‘마닐라 나우’ ‘세부 넥스트’ ‘비주 세부’ 등 기존의 다양한 디자인 행사를 한자리에 모았다. 테마는 ‘비욘드 아티산십(beyond artisanship)’. 대를 이어 물려받은 수공예 기술에 마케팅과 브랜딩,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는 방법론으로 디자인을 하자는 행사다. 외국인 전문가들을 초빙해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나가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한국에서는 한-아세안센터 주관 아래 디자인과 공예 부문 전문가들이 참석해 현지 디자이너 및 공예가들과 교류하며 비즈니스 가능성을 타진했다.

필리핀 공예 디자인 박람회 ‘마닐라 페임 2012’ 관람기


전시장 입구 바깥 홀에 설치된 새하얀 쇼룸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사롭지 않은 형태의 조명기구들이 매달려 있다. 런던·뉴욕·싱가포르·빈 등 세계 각국에 퍼져 활동하는 필리핀의 젊은 디자이너들로 조직된 디자인그룹 EPOCH가 선보인 아방가르드한 디자인들이다. 그 맞은편에는 장인들이 묵묵히 나무를 깎고, 매트를 짜고, 구슬을 꿰고 있다. 혁신적인 작업을 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한데 모은 쇼룸 ‘Red Box’와 장인들의 제조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Creation Station: Craft Revival’이 마주한 형태다. 전통 기술과 첨단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필리핀 디자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장인정신을 넘어 디자인을 향해 가겠다는 이번 행사의 테마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행사장 내부는 가구와 생활소품, 각종 장신구를 생산하는 수백 개 업체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중심부를 차지한 가장 큰 부스 ‘Trend Stores’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국제 마케팅 및 브랜딩 분야의 전문가 마이클 클레그혼(Michael Cleghorn·호주)과 린다 심슨(Linda Simpson·미국)이 50여 참가업체와 협업해 6개월 동안 개발한 상품들을 전시했다. 액세서리·가방 등 패션잡화부터 꽃병·쿠션 등의 인테리어 소품, 테이블과 의자 등 가구에 이르기까지, ‘Paradiso’ ‘Stone Age’ ‘Tribal Fusion’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진 각각의 쇼룸으로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를 정의하고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Paradiso’ 파트에는 파스텔톤의 레드와 블루 계열에 지중해 느낌이 가득한 큼직한 꽃과 햇살 무늬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했다. “지중해는 유럽인들이 탈출을 꿈꾸는 최상의 장소다. 바다와 태양, 지중해변에서 발견되는 식물들의 밝고 화사한 컬러들에 영감을 받은 따뜻한 감각의 디자인들을 모았다”는 것이 린다 심슨의 설명. ‘Stone Age’ 파트는 차갑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 그레이 컬러에 자수정, 감람석, 아쿠아머린 등의 은은한 컬러를 배합한 소품들로 꾸몄다. 자연 그대로 돌의 컬러와 질감을 적용하면서 모양은 깔끔하게 다듬은 가구들에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의 철학이 엿보였다. ‘Tribal Fusion’ 파트에는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의 직물들이 주를 이뤘다. 야칸족 등 필리핀의 원시 부족들은 물론 인디언과 세계 온갖 부족의 고대 패턴들을 강렬한 원색과 브라운 계통 컬러로 엮어냈다. 동남아 디자인의 이국적인 느낌을 보편적 정서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컬러와 패턴을 중심으로 한 키워드로 트렌드를 나눴지만, 카피즈 등 다양한 조개 껍데기·마닐라삼·코코넛·바나나섬유·등나무 등 천연소재들을 믹싱한 것은 ‘Trend Stores’ 전체에 일관된 흐름이었다. “덩굴풀과 면화, 마닐라삼과 뱀가죽 등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소재를 결합함으로써 자연의 질감과 모던한 형태를 함께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공예는 흔치 않고, 여기에 필리핀 디자인의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 마이클 클레그혼의 설명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효과적인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위해선 스토리가 우선돼야 한다. 비주얼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컬러와 소재, 시즌, 패턴, 테마 각각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반복과 쇼킹한 도전이 모두 비주얼을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

외국 전문가들이 필리핀 공예를 디자인 트렌드로 재정의한 시도가 ‘Trend Stores’라면 필리핀 첨단 디자인의 현주소를 보여준 쇼케이스는 ‘DeXign Zone’이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에(Kenneth Cobonpue)와 부지 라유그(Budji Layug)가 큐레이팅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전시공간이다. 각각 등나무와 대나무를 독특하게 사용해 필리핀 디자인의 주력 부문인 가구 분야에서 디자인혁신을 이룬 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한-아세안센터
한-아세안센터(사무총장 정해문 )는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맞은 2009년 설립됐다. 한국과 동남아 10개국 간의 교역 증대, 투자 촉진, 관광 및 문화교류 활성화를 통한 상호이해와 협력증진을 추구하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 지역 간 이해와 우호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