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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윤리지원관실’ 이름 뒤 숨은 정권 보호 비선조직

중앙일보 2012.03.31 00:51 종합 4면 지면보기
불법사찰 논란을 빚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있던 서울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 공직 윤리지원관실은 현재 공직복무관리관실로 이름이 바뀌어 이 건물 4층에 있다. [안성식 기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쪽으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길 왼쪽에 나오는 5층 건물이 정부 중앙청사 창성동 별관이다. 이 건물 4층엔 몇몇 정부 기관이 입주해 있다. 대통령실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 행정안전부 산하 승강기사고조사판정위원회, 그리고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복무관리관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바꿔 단 이름이다. ‘평범한’ 정부기관에 섞여 ‘공직자들의 윤리를 지원하는’ 조직인 것처럼 존재했었지만 한때 이곳이 사실상 사찰조직, 정권의 ‘비선(秘線)’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원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공직자에 대한 암행감찰을 수행하던 ‘조사심의관실’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 조사심의관실을 없앴다가 5개월 만에 부활시켰다. 부활의 이유가 다소 황당하다. 여권 핵심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노무현 정부 쪽 인사들이 사표를 안 내고 버티면서 3월 월급을 챙겨갔다. 이 바람에 이 대통령 쪽 사람들이 한 달간 급여를 받지 못했다. 그 일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기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안다.”



 실제로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청와대 직원들에게 첫 월급을 지급하는 데, 새 정부 쪽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전 정부 인사들의 사표 처리가 늦어지면서 정식 임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핵심 인사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좀 무섭지 못하고, 왜 이리 엉성하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곧바로 ‘정무적 사안을 물밑에서 조용히 처리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특명수사를 담당했던 ‘사직동팀’ 같은 걸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해 중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광우병 촛불시위’가 번졌다. ‘팀’ 구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더 커졌다. 다만 청와대에 만들면 곧바로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총리실 산하로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름도 과거 사직동팀이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란 평이한 것을 사용했던 것처럼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지어서 하는 일을 ‘위장’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부활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과거의 조직보다도 오히려 파워가 있었다. 사직동팀은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지휘하에 현직 경찰 27명이 활동했고, 노무현 정부의 조사심의관실은 경찰·검찰·국세청 파견 직원 38명으로 구성됐으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7개 팀으로 출발해 인원이 40명을 넘었다. 이들은 무늬만 총리실 조직이었을 뿐 정권의 외곽 별동조직으로 활동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비위 공직자를 찾아내는 감찰 업무는 기본이고 공직자 평가 업무까지 수행했다. ▶고위 공직자들의 노무현 정부 당시 역할 ▶대통령의 국정철학 수행도 등을 체크하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명절 때마다 공직자 뇌물 비리 등을 한 달도 안 돼서 조사하곤 했는데, 수십 건의 비리 사례를 찾아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이런 깜짝 놀랄 실적의 비결이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사찰 방법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영장 없는 자료 압수, 미행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2010~2011년 국정감사 때 집중 제기됐다.



 민간인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사찰 사건 이후인 2010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금의 공직복무관리관실로 개편됐다. 당시 42명이던 소속 인원은 33명으로 줄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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