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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강운구의 쉬운 풍경 <3> 그림자가 그린 네 폭 병풍

중앙일보 2012.03.31 00:24 종합 15면 지면보기
대구시 달성군 구지, 2012


완성된 그림자란 없다. 그것은 시간을 따라 자동인 듯이 슬슬 기며 달라지다가 어떤 순간에 갑자기 사라진다. 그런 덧없는 그림자를 네모난 틀(프레임)에 담으려고 나는 내 그림자를 끌며 틀(기계)을 들거나 메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어떤 그림자가 느낌을 주거나 말을 할 때 그것을 알아채고 주저 없이 틀에 가두는 게 사진가가 하는 일이다. 그것도 어떤 대상이 우연하게 구성, 톤, 빛깔, 질감 같은 여러 요소와 잘 어우러져서 스스로가 그림이 되었을 때(이게 바로 저 ‘결정적 순간’이다.) 셔터를 눌러야 누군가가 눈길을 주는 사진이 된다. ‘포토그래프’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라틴 말이고, 찍는 행위를 이르는 ‘촬영’은 그림자를 취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빛이 그린 그림이 그림자이며 그것을 거둬 담는 것이 사진이다. 실체 없는 그림자는 없다. 이 세상은 움직이는 이런저런 그림자로 꽉 차있다. 그것을 저장한 사진은 그러므로 정지된 그림자다. 어떤 수단보다도 실체를 빠르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자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사실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많은 사진가들은 다른 무엇을 하려고 몸부림친다. 어떻게 되건 그 ‘다른’ 게 ‘사실성’이 배제된 사진이라면, 아마도 팥소 없는 찐빵일 것이다.





전통건물의 벽에는 굵은 나무틀(액자)이 많다. 그것들은 거의 다가 비어있다. 그 텅 빈 틀이 이윽고 알맞게 채워질 때까지 마치 그림자인 듯이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것을 내 틀로 들어오게 한다.



네 폭 병풍 또는 벽화에, 물 오르는 나무 그림자와 이른 봄 빛이 담겼다.







강운구(71)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 년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왔다. 한국적 시각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했다. 글을 무섭게 잘 쓴다는 평도 듣는다.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등의 사진집과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 사진 산문집, 그리고 『강운구 사진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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