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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디자인 베낀다고 입장 거절 당했었는데…"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26면 지면보기
1 미국 뉴욕의 고급 백화점 ‘바니스 뉴욕’이 홈페이지에서 한국 브랜드 ‘오즈세컨’을 ‘스타일에 관해선 최고’라며 소개한 화면이다. [중앙포토] 2 ‘갤럭시’의 올봄 신상품. [사진 제일모직] 3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티 이마지네 워모’에 마련된 한국 브랜드 ‘시리즈’의 전시 부스 모습이다. [사진 코오롱] 4 ‘시리즈’가 전시부스를 차린 ‘뉴 비츠’ 전시관 입구다. 뉴 비츠는 주목할 만한 브랜드만 모아 놓은 전시장이다. [사진 코오롱]


‘피티 이마지네 워모’(이하 피티)는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매년 1, 6월 두 차례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남성복 박람회다. 밀라노나 파리 컬렉션보다 한발 앞서 열리기 때문에 업계의 주목도가 매우 높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그해의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 웬만한 로컬 브랜드는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그런데 피티에서 최근 “내년 1월 박람회에 한국 브랜드 ‘갤럭시’를 스페셜 프로젝트 전시관에 유치했다”고 밝혔다. 박람회 운영사인 ‘피티 이마지네’의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패션이 박람회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매년 참가하는 유수 브랜드만 갖고는 박람회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람회란 가장 신선한 트렌드를 끊임없이 보여줘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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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대중음악에 이어 패션에도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한류 스타가 입은 옷이 잘 팔리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 패션 브랜드가 주목받는 곳은 패션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불리는 미국 뉴욕이다.



‘오즈세컨’의 올 봄·여름 신상품. 미국의 고급 백화점 ‘바니스 뉴욕’의 8개 매장에 걸려 있다(사진 왼쪽). [사진 SK네트웍스]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우영미(wooyoungmi)’ 컬렉션(사진 오른쪽). [사진 우영미]
 ◆한국 브랜드 인식 확 달라졌다=피티의 나폴레오네 CEO는 “갤럭시 초청은 우리 쪽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피티에선 도쿄 패션위크가 ‘스페셜 프로젝트’ 전시관을 채웠다. 나폴레오네 CEO는 “도쿄 패션위크의 경우 일본 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지만 갤럭시는 우리가 찾아가 설득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제일모직 쪽은 피티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한태민 대표(샌프란시스코 마켓)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디자인을 베껴 간다며 한국인 관람객들이 박람회 부스에서 입장을 거절당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피티에서 한국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소감을 털어놨다. 피렌체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10여 년 전부터 피티를 관람해 온 그는 현재 서울에서 남성 전문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대표는 “한국 브랜드의 품질이야 전부터 나무랄 데 없었는데 최근엔 그에 걸맞은 고품격 이미지까지 갖춰가고 있다”며 “이제 진짜 패션 한류를 기대할 만하다”고 전망했다.



 지난 1월 피티에는 한국 브랜드론 처음으로 코오롱에서 만든 ‘시리즈’가 첫 부스를 열며 이탈리아에서 패션 한류의 시동을 걸었다. 시리즈를 총괄하는 한경애 이사는 “남성복 분야에선 피티에 들어가느냐 못 가느냐로 브랜드 성공 여부를 가늠할 정도”라면서 “유명 디자이너 이름을 내세운 것도 아닌 한국 패션 브랜드가 단독으로 피티에 참여한 것만 봐도 세계 주류 패션계가 한국을 달리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코오롱 시리즈는 피티의 각 주제관 중 ‘주목할 만한 새 브랜드’를 모아 놓은 ‘뉴 비츠’에 입성했다. ‘뉴 비츠’ 전시관 입구에 마련돼 관람객이 가장 몰리는 자리를 배정받았다. 나폴레오네 CEO는 “80년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패션이 서서히 유럽 내에서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우리 회사 시장 조사팀들도 한국 패션 브랜드를 더욱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바니스 뉴욕, 오즈세컨 매장 15개로 확대=미국 뉴욕의 고급 백화점 ‘바니스 뉴욕’(이하 바니스)은 이번 주 중반까지 자사의 홈페이지에 한국 패션 브랜드 ‘오즈세컨’ 소식을 다뤘다. 백화점의 대표 상품만 골라놓은 ‘더 윈도’ 코너에서다. 대개 미국의 유명 백화점은 브랜드가 장소만 빌려 직접 영업을 하는 우리나라 백화점과 달리 각 상품 분야 매입 담당자가 골라 온 상품을 판다. 그래서 홈페이지라고 해도 특정 브랜드만 노출시키기보다 ‘스커트’ ‘원피스’ ‘재킷’ 식으로 모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즈세컨 브랜드는 이례적으로 따로 소개됐다. ‘스타일에 관해선 오즈세컨이 최고’라는 제목도 붙였다. 오즈세컨은 SK네트웍스가 만드는 여성복 브랜드다. 재킷 한 벌에 400달러(약 46만원) 정도로 의류의 가격경쟁이 심한 뉴욕 백화점에선 고가에 속한다. 지난해 가을·겨울 상품부터 바니스에서 판매됐다. 뉴욕 매디슨가 백화점 한 곳에서만 팔던 게 반응이 좋아 올 봄·여름 상품은 미국 뉴욕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와 댈러스 등 8개 바니스 매장으로 확대됐다. 오즈세컨 매입을 주도한 바니스 매니저 몰리 네일론은 “우리 백화점에서만 파는 조건으로 올 가을·겨울엔 미국 전역의 15개 바니스 매장에 오즈세컨 상품이 전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금시간대 패션쇼 잡은 우영미=지난해 10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단체인 프랑스패션협회가 한국인 디자이너 우영미(53)씨의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한국 브랜드론 처음이다. 프랑스패션협회는 1868년 고급 맞춤복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 ‘쿠튀리에’가 모여 만든 조합에서 비롯했다. 프랑스 파리의 고급 패션을 상징하기 때문에 디오르,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같은 프랑스 대표 브랜드는 모두 이 협회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협회의 디디에 그랑박 회장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혹은 파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만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만든 단체라서 외국인 가입은 더욱 어렵다”면서 “우영미가 한국 브랜드 최초로 가입한 것 자체가 한국 패션이 프랑스 주류 패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패션 분야 국제홍보 전문가인 로랑 지셀은 “지금껏 많은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가 이 협회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거부당하기 일쑤였다”며 “10여 년 동안 우영미가 파리에서 펼친 활동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남성복 브랜드 ‘쏠리드 옴므’로 알려진 우씨는 동생 장희(45)씨와 함께 2002년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기 시작했다. 지난 1월까지 총 20번의 컬렉션에 참여했다. 그는 첫 진출 당시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들이 가장 기피하는 시간대인 컬렉션 첫째 날 오전 10시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올 1월 파리컬렉션에선 황금시간대인 넷째 날 오후 4시 스케줄을 받아 파리 컬렉션에서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넷째 날엔 디오르, 겐조, 에르메스 등이 패션쇼를 열었다.



 또 다른 한국인 디자이너 정욱준(46)씨도 자신의 브랜드 ‘준지(Juun.J)’ 패션쇼를 황금시간대에 열었다. 그는 컬렉션 셋째 날 오후 2시를 배정받아 입생로랑, 지방시, 꼼데가르송 등 쟁쟁한 브랜드와 같은 날 컬렉션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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