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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여자를 찾아라" 김용 총재 선임 파격 부른건…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차기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연합뉴스]
‘여자를 찾아라(Cherchez la femme)’. 프랑스 속담이다. 모든 사건은 여자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다. 구미 중심의 세계 경제·금융 체제를 대표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양대 기관의 수장 자리를 놓고 구미국과 신흥국이 벌이는 쟁탈전의 서막에도 두 여자가 등장한다. 폴 울포위츠(69) 전 세계은행 총재가 특혜를 베푼 여자 친구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63) 전 IMF 총재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 호텔 여종업원이다.


울포위츠·스트로스칸 불명예 퇴진이 신흥국 반격 불렀다
미국·유럽 독식한 세계은행·IMF 총재

 2007년 4월 울포위츠 당시 세계은행 총재는 궁지에 몰렸다. 여자 친구에게 제공한 특혜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근무하던 여자 친구 사하 리자를 미 국무부에 파견하면서 직급과 연봉을 올려준 게 화근이었다. 2005년 미 국방부 부장관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옮기면서 규정상 함께 근무할 수 없게 된 여자 친구를 위해 그가 권한과 영향력을 사사롭게 행사한 것이다. 이게 들통나자 그는 마지못해 사과했다. 1만3000여 명의 세계은행 직원협의회 등은 사임을 요구했다. 그는 이사회로부터 공식적인 비난 결의까지 받고 명예를 회복할 틈도 없이 물러나야 했다. 총재에 취임하면서 “극빈국 지도자의 부패가 가난의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여자 친구를 챙기다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이다. 울포위츠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이라크 개전의 이념적 설계사였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이었다.



 울포위츠가 물러나자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개혁 1순위는 미국인과 유럽인이 각각 세계은행과 IMF 총재직을 독식하는 관행이었다. 세계은행 총재는 60여 년 전 설립 때부터 최대 지분을 가진 미국이 유럽의 동의를 얻어 미국인을 앉히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반대급부로 유럽은 IMF 총재를 차지했다.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은 세계은행 총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뽑으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유럽의 낙하산만 허용하는 인선 방식은 구태의연한 야합이라는 비판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반발 기류를 가볍게 깔아뭉갰다. 부시 대통령은 관행대로 2007년 로버트 졸릭(59) 전 국무부 부장관을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신흥국의 완패였다.





 4년 후. 신흥국에 다시 기회의 장이 섰다.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의혹으로 미국 뉴욕경찰에 체포되면서다. 스트로스칸은 완강히 부인했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불리한 증언과 정황 속에서 자리를 내놔야 했다. 프랑스의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려던 스트로스칸의 꿈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대선전이 한창이던 지난 26일 그는 매춘 조직 연루란 새로운 혐의로 기소됐다. 프랑스의 반스트로스칸 진영은 그의 낙마를 즐겼다. 그 이상으로 프랑스 밖의 신흥국들은 국제기구의 안방을 차지할 기회라며 대대적 공세를 취했다. 중국 인민일보 산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당시 “중국은 세계 최대의 무역 대국이며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다”며 “중국인이 IMF 총재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도전에 ‘지정석’을 사수하려는 미국과 유럽은 다급해졌다. 전례 없는 방어 전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신흥국과 흥정을 시작했다. IMF에서 최대 지분(약 17%)을 보유한 미국은 새 총재로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가르드(56) 재무장관을 공식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첫 여성 총재였지만 유럽 출신이 맡는다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흥국이 완패한 것만은 아니었다. 물밑 절충의 흔적을 숨기지는 못했다. 라가르드는 취임 후 곧바로 중국 출신인 주민(朱民·60) 전 총재 특별고문을 IMF에 추가로 신설된 부총재직에 앉혔다. 지난 9일에는 중국 출신 경제학자 린젠하이(林建海·57)를 신임 사무총장으로 지명했다. 겉만 보면 IMF 쿼터(지분) 개혁에 따라 중국의 위상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로 급부상한 점을 반영한 것이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을 인정한 조치다.



 이 같은 신흥국의 두 차례 도전은 몸풀기에 불과했다. 올해 6월 말 임기가 끝나는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달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대결 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신흥국은 조직적으로 경쟁 후보를 내놓았다. 기도 만테가(63) 브라질 재무장관은 “후보자는 국적이 아니라 능력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도 “공개 경쟁을 기반으로 인선하기 바란다”고 압박했다. 선진국 안에서도 동조자가 등장했다.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69)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은행 총재를 미 대통령이 단독으로, 또는 영국 총리 등에게 전화 몇 통 한 뒤 임명하는 관행을 이제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은행 총재가 반드시 개발도상국 출신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개도국 출신자라면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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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개도국·신흥국의 거센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전통적 ‘지분’을 지켜야 했다. 버락 오바마(51) 대통령은 극적인 카드를 찾아냈다. 김용(53) 다트머스대 총장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이민 1.5세대다. 미국인이지만 신흥국을 달랠 수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세계은행 총재가 되려면 187개 회원국 중 85%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2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회원국이 그룹별 순번제로 맡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단독 이사국이며 최대 지분(16.41%)을 보유하고 있다. 또 미국은 세계은행에서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의 동의 없이 총재가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미국 독식에 반발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질 전망이다. 신흥국의 힘이 커지면 IMF나 세계은행에서 지분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시차가 있을 뿐이다. 2010년의 IMF와 세계은행 지분 조정은 그 시작이었다. IMF와 세계은행에서 총재 등 요직을 차지하려는 신흥국의 움직임은 구미의 패권을 와해하려는 의도란 분석도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신흥국들은 아예 딴 살림을 차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브릭스(BRICS)는 신흥국만의 별도 통화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인구·영토·자원 대국이다. 브릭스 재무장관들은 2월 ‘브릭스 은행’ 설립을 통해 다른 신흥국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개발은행은 29일 인도 뉴델리에서 4개국과 위안화 대출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달러 대신 위안화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딴 살림’ 전략은 구미국을 압박해 ‘안방 차지’ 전략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4~5년 뒤 IMF와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유럽과 미국이 계속 차지하려면 신흥국에는 더 큰 양보를 해야 할 듯하다. 그게 국제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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