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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살아남으려면 속여라, 자연이든 사람이든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32면 지면보기
현혹과 기만

피터 포브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360쪽, 2만원






자연이 지고 지순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영국 저술가인 지은이는 인정사정 없이 강펀치를 날린다. 순수는 커녕 속임수로 가득 찬 게 자연임을 일깨운다. 왜냐고? 적에게 들켜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우선 나의 존재를 속이고 봐야 하니까. 작은 곤충이든 덩치깨나 있는 포유류든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나방이 주변과 비슷한 색으로 위장해 새의 먹잇감이 되는 걸 피하는 것 정도는 애교다. 어떤 종류의 나비는 과감한 허허실실 전법까지 구사한다. 배짱 좋게 눈에 잘 띄는 붉은 색을 띠어 대단한 독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위장뿐 아니라 의태도 있다. 무서운 생물과 비슷한 짝퉁 색깔이나 무늬로 호가호위 하는 것이다. 예로 독이 없는 소노란사막왕뱀은 맹독성 산호뱀과 생김새가 유사품이다. 적이 독사로 착각해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도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적을 속인다. 군에서 응용하는 위장전술의 저작권은 자연에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은 군함을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 독특한 패턴으로 칠해 적 잠망경의 눈을 피하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자연의 위장술은 고스란히 베껴 전쟁에 써먹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생물학자 휴 코트는 생존 경쟁이 극심한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발견한 다양한 위장기법을 북아프리카 전선 등에 적용했다. 적의 폭탄을 허비시킬 모조 활주로와 휘발유통을 두들겨 만든 가짜 철로 등을 개발했으며, 독특한 문양으로 적의 눈을 속이는 야포 도색도 개발해 가뜩이나 어려운 독일군을 농락했다. 그는 자연의 위장과 의태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야전 교리에 결합했다. 예로 알락해오라기가 갈대밭에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방향에 따라 자신의 목을 흔들어 천적에 들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야전에 고스란히 적용했다. 흔들리는 위장 막이 그것이다.



 마술사 재스퍼 매스커린도 북아프리카 전선의 위장 전문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탱크를 트럭으로, 대공포를 트레일러로 각각 위장해 적기의 눈을 속였다. 물론 공격해오는 비행기도 생존을 위해 위장을 했다. 아랫면은 하늘을 배경으로 보면 윤곽이 잘 보이지 않게, 윗면은 땅을 배경으로 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도록 각각에 맞는 페인트를 칠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살아남으려면 속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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