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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한 걸음 들이면 사랑, 한 걸음 빼면 추락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32면 지면보기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611쪽, 1만3800원






사랑의 기슭은 아슬아슬하다. 한 걸음 들이면 사랑에 닿지만, 한 걸음 빼면 사랑에서 추락한다. 그러나 사랑의 기슭을 겨우 통과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랑의 아슬아슬함은 점차 누그러진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삼킬 때는 달콤하지만, 삼킨 뒤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이 소설은 통상적 ‘사랑 공식’을 반박한다. ‘오래오래’ 지속되는 사랑도 가능하다고 우긴다.



  소설은 ‘그 남자’ 가브리엘과 ‘그 여자’ 엘리자베트의 사랑 이야기다. 가브리엘과 엘리자베트가 마주친 사랑의 기슭은 아슬아슬하다 못해 위태롭다. 가브리엘도 엘리자베트도 이미 혼인한 파트너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이들의 어긋난 사랑을 ‘불륜’ ‘밀애’ ‘치정’ 이라 부른다.



 그러나 작가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이런 사랑도 가능하다’며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그것도 매혹적이고 아리따운 사랑의 속삭임들로.



 원예가인 가브리엘은 어느 날 식물원에서 엘리자베트를 마주친다. 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엘리자베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과 추운 날 후드가 달린 빨간 외투를 입는다는 것뿐.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사랑의 비전향 장기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가브리엘은 곧장 아내에게 작별을 통보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향해 ‘오래오래’ 먼 길을 떠난다.



 가브리엘과 엘리자베트의 모험적 사랑은 행복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 소설의 결론까지 세세히 묘사하는 건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것이리라. 대신, 마지막 장면의 한 토막을 옮긴다. 가브리엘의 건배사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의 이름은 ‘지속’입니다.”



 작가는 소설의 머리에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의 『로드짐』에서 한 대목을 옮겨 적었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 함은 마치 바다에 빠지듯 한바탕의 꿈에 빠지는 것일세.” 『오래오래』는 한바탕 꿈을 꾸듯 읽히는 소설이다. 다 읽은 뒤에도 ‘오래오래’ 깨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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