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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막노동·밀입국·고무보트 … 아프간 소년의 대장정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마시멜로

284쪽, 1만2000원




가슴이 먹먹해 온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폭정을 피해 고향을 탈출한 열살 소년의 7년에 걸친 목숨을 건 여정을 쫓는 이 책을 덮으면 그렇다. 책은 파키스탄과 이란·터키·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를 건너는 ‘죽음의 대장정’을 담은 실화다.



 주인공인 에나이아트는 아프가니스탄의 나바에 살던 하지라족 소년. 이슬람 수니파인 파슈툰족이 주도권을 잡게 되자 시아파인 하지라족은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탈레반이 집권한 뒤 수천 명의 하지라족이 학살당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파키스탄으로 탈출한 에나이아트. 하지만 사흘 뒤 어머니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홀로 남은 그에게 남은 것은 생존을 위한 사투뿐. 그는 “어머니의 결정은 미래를 향한 여행을 하며 늘 위험에 처하는 쪽이, 당신 곁에 있지만 진흙탕에서 매일 두려움에 떨며 위험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라며 꿋꿋하게 운명에 맞선다.



 1만㎞에 이르는 에나이아트의 여정은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고되고 처절한 시간의 연속이다. 이란 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본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27일간 걷고 또 걸으며 산을 넘어 터키로 밀입국 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를 향해 바다를 건너고, 이탈리아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트레일러에 몰래 몸을 싣는다.



 운명의 가혹함에 맞서는 에나이아트의 모습은 무모하게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는 “죽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도 항상 그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며 운명을 이겨낸다.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망명자 체류허가증’을 받은 그는 8년 만에 고향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곤 말 없는 눈물만 쏟아낸다.



 에나이아트의 독백은 이렇다. “중요한 건 사건들이에요. 사건과 이야기.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지, 어느 곳에 누구와 있느냐가 아니니까요.” 그랬다. 그의 삶을 바꾼 건 그가 두려워도 고통스러워도 피하지 않았던 매 순간의 사건이었다. 또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 친절을 베풀어 준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에 버금가는 수작이라는 세계 언론의 평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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