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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사후피임약 마음대로 살 수 있어야 하나

중앙일보 2012.03.31 00:00 종합 40면 지면보기




현재 의사 처방을 받아야 구입할 수 있는 사후(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고 낙태를 줄일 수 있으므로 이를 허용하자는 측과 남용·부작용의 우려가 있으므로 처방 없이는 살 수 없게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료계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본다.





위험한 낙태 막으려면 구입 쉬워야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
몇 해 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 간의 낙태 논쟁과 함께 낙태 시술을 한 의사들을 고발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불가피하게 임신이 되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모순된 법 규정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여성의 건강 측면보다 윤리적·법적 측면에서 금기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과 형법상에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조차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100% 완벽한 피임 방법이 없는 현실에서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낙태는 더욱 음성적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낙태 비용에 위험 비용까지 전가되고 무면허 시술 등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청소년 등 취약계층의 경우 부담이 더욱 크다. 실효성 없고 사문화되어 있는 현행법과 낙태 규제 정책을 전환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그러나 낙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각계의 시각이 서로 달라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 이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건강 측면에서 낙태 예방 수단이자 실천적 방안으로 사후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사후응급피임약을 사용하는 데는 의사의 전문적인 진단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매가 가능하므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사후응급피임약은 최대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24시간 이내 복용 시 95% 이상 임신을 막을 수 있어 가급적 12시간 이내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낙태수술이나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더 큰 위험이 발생하게 되므로 사후응급피임약은 소비자의 빠른 판단으로 복용을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식약청도 사후응급피임약을 약리적인 판단에 의한 의약품의 안전성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일반약으로 분류해도 타당하다는 의견이다. 안전성 문제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도 낙태 예방 방안으로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사후응급피임약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캐나다·벨기에·핀란드·스페인·스웨덴·호주·중국·뉴질랜드 등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시판되고 있으며 일부 연령 제한(미국의 경우 17세 이상)을 두고 있다.



 그간 낙태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예방 차원의 논의조차 가로막혀왔다. 그러나 사후응급피임약이 피임 이외 다른 기능을 할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후응급피임약은 피임약으로 여성의 건강 측면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그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낙태 예방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





여성 건강 위해선 의사 처방 받아야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재무이사
여성의 건강을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에서 제외하는 것은 편리성을 내세워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응급피임약은 피임 성공률이 98~99%인 일반적인 여성 피임법에 비해 피임률이 약 85%로 현저히 떨어지므로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복용 후 약 30%의 여성에게서 일어나는 부정기적 출혈을 생리로 오인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전문의의 처방과 추후 관찰이 필요하다.



 일반피임약의 10~30배의 고농도 호르몬으로 인한 부작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동종 호르몬에 민감한 여성이나 혈전증 등의 과거력이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진단되지 않은 질 출혈이나 골반염·난관염 등을 가진 여성, 자궁외 임신 경험이 있는 일부 여성에게는 응급피임약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산부인과 전문의의 문진과 처방이 필요하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사전 피임 실천율이 낮고 먹는 피임약 복용률이 2.2%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피임 대체 수단으로 오·남용될 우려가 현저히 크다. 의사 처방이 필요함에도 이미 응급피임약 복용률이 4.7%로 그 두 배 이상이다.



응급피임약 오·남용 시 호르몬에 대한 내성으로 인해 복용 후에도 임신이 되거나, 생리주기에 심각한 손상 유발 등 반복적 복용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 또한 대두할 수 있다. 지금도 산부인과에서는 응급피임약을 수시로 복용하고 싶다며 여분의 응급피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매우 흔한 실정이다.



 응급피임약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약이 될 경우 피임약이나 피임장치처럼 여성의 피임률 및 남성들의 콘돔 사용률이 동시에 저하돼 피임 없는 성관계를 증가시킴으로써 인공임신중절, STD(성감염성질환), PID(골반염)를 늘릴 수 있다. 결국 선진국의 피임교육 시 강조되는 ‘더블더치’(여성 피임약, 남성 콘돔 등의 이중 피임)에 역행하는 셈이 된다.



 응급피임약은 3~5일 내 복용하는 약이므로 접근성 문제도 국내에서 큰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없다. 분만을 하는 여성병원에서는 24시간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타과, 또는 종합병원의 응급실 등 의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처방을 받을 수 있다.



 2000년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노르웨이에서는 인공임신중절률 감소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 응급피임약의 판매량만 30배 이상 증가했다. 사전 피임교육이 잘돼 있고 피임약 복용률이 높은 미국에서도 18세 미만은 응급피임약 구매에 의사 처방을 받게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건강한 계획 임신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정부와 교육계·의료계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부터 정확하고 현실적인 피임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관리되지 않은 응급피임약은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재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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