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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라서, 이렇게 좋은 날들

중앙일보 2012.03.30 04:30 Week& 1면 지면보기
전남 광양 매화마을의 청매실농원은 올해도 홍매화로 붉게 물들었다. 향긋한 매실된장과 매실고추장을 넉넉히 품은 장독이 점점이 수줍게 핀 매화꽃과 어우러져 옹기종기 줄 지어 있다. 담 너머까지 빼곡히 들어찬 장독이 2500개가 넘었다.


온천지에 봄 햇살이 가득합니다. 3월 말까지 눈발을 날리며 봄을 시샘했던 꽃샘추위도 이제 완전히 물러간 듯합니다.



 이달 초만 해도 봄은 남도 앞바다에서 머뭇거렸습니다. 남해안 산비탈의 다랑논에서 봄동과 얼갈이배추를 푸릇하게 키워낸 다음에야 봄은 슬그머니 서해와 동해로 찾아들었습니다.



 제철을 맞아 알을 가득 밴 주꾸미며 살점 두툼한 도다리, 뼈째 먹는 간자미, 생멸치 등 봄에 먹어야 제맛인 생선들이 포구마다 넘칩니다. 예년보다 바다 수온이 낮아 아직 풍어의 시기는 아니지만, 봄 바다의 풍요를 만끽하기엔 충분합니다. 덕분에 요즘 뱃사람의 밥상은 다리가 휘어질 판입니다.



 뭍에도 봄의 전령이 올라왔습니다. 지명에 유달리 꽃 이름이 많은 섬진강 주변에는 희고 붉은 동백·매화, 샛노란 산수유 꽃망울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동백과 매화는 지난해 말 따뜻한 겨울 날씨에 깜빡 속아 때이른 꽃을 피웠다가 갑작스러운 한파에 화들짝 놀라 꽃잎을 닫았었지요. 하지만 얼었다가 이내 부활했습니다. 매운 꽃샘추위를 이겨내서 그런지 꽃 빛깔이 어느 해보다 짙고 곱습니다.



 섬진강 하류, 전남 광양 매화마을(섬진마을)은 온통 달콤한 매화 향기로 휩싸였습니다. 80여 년 전 가난한 강촌에 처음 밤나무·매화나무를 들여온 이는 1988년 작고한 김오천씨입니다. 그 댁 며느리가 된 홍쌍리(69) 매실명인의 청매실농원에는 지금도 매실된장과 매실고추장이 장독마다 새콤하게 익어갑니다.



 매화꽃이 화사하게 핀 섬진강 줄기를 따라서 지리산 자락을 넘어가면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도 점점이 꽃 등불을 밝힙니다. 샛노란 꽃의 전설은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산둥성에서 한 처녀가 구례로 시집을 왔습니다. 처녀의 품에는 고향에서 가져온 노란 꽃이 피는 나무 한 그루가 안겨 있었다지요. 그게 구례 산수유의 유래라고 전해져 옵니다.



 섬진강변에 울긋불긋 꽃이 필 때쯤이면 은어와 황어도 힘차게 상류로 올라옵니다. 강촌 아낙의 소쿠리에는 강에서 나는 ‘강굴’이 수북이 쌓입니다. 한입에 삼키면 숨이 막힐 만큼 굵직한 굴을 껍질째 번개탄에 굽습니다. 굴 껍데기가 타 들어 가는 구수한 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봄이 무르익어 4월이 오면 개나리·벚꽃·진달래·철쭉이 차례로 산과 들에 꽃물을 들이겠지요. 흐드러진 봄꽃의 향연은 다음 계절의 풍요까지 기대하게 합니다.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열매가 열려 다시 풍요로운 자연의 성찬을 만끽하게 될 테니까요.



 바야흐로 봄입니다.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week&에서는 지난 한 달 전국을 돌며 봄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향긋한 꽃 내음과 군침 도는 먹을거리를 한 아름 안고 돌아왔습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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